영국의 상속세 감면·폐지 논의…한국이 더 시급하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브렉시트 통과 이후
침체일로 영국 경제
성장률 올리기 위해
상속세 폐지 추진 파격

세계최고 韓 상속세율
주가 발목 잡는 요인
감면 더 시급한데도
'국민 정서법'에 막혀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가 우여곡절 끝에 국민투표에서 통과된 이후 영국 경제는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 최후의 보루였던 런던도 국제금융중심지의 역할이 크게 퇴색했다. 주식은 프랑스 파리와 베네룩스 3국에, 채권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빼앗겼다.

과다한 국가채무와 스태그플레이션 징후에 시달린 영국은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감세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제시한 ‘제3의 길’이었다. 래퍼 곡선에 기반을 둔 공급 중시 경제학의 상징인 감세는 영국이 낳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총수요 진작책과 대척에 놓인 정책 처방이라는 점에서 최후의 수단이기도 했다.
영국이 감세를 추진하자 이목은 ‘어느 세제를 선택할 것인가’에 쏠렸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영국이 감세의 보편적 대상인 소득세, 법인세가 아니라 상속세를 택했다는 점이다. 상속세는 영국 왕실의 존립 기반이자 영연방 국가가 충성의 의무를 다하는 수단이다. 이 때문에 영국 의회에선 그동안 증세 이외 어떤 방안도 논의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겼다. 브렉시트 이후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로 이어진 옥스퍼드대학 출신 포퓰리스트 총리들이 상속세를 강화하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2022년 10월 취임한 리시 수낵 총리는 기득권층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상속세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안을 밀어붙였다. 그 어떤 세제보다 경기와 증시 부양 효과가 큰 상속세를 폐지하지 않으면 영국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깔려 있었다.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커스 미국 시카고대 명예교수의 모형(R-L 모형)으로 상속세 감면 효과를 추정해 보면 영국의 경우 재정지출, 금리 인하와 같은 전통적인 총수요 진작책보다 1.5배 이상 성장률과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로 비교하더라도 영국이 가장 높게 나왔다.

우리나라는 영국보다도 상속세 감면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상속세율은 대주주 할증 과세까지 포함하면 무려 60%에 달한다.

독일은 뉴밀레니엄 시대를 맞아 35%에서 30%로 한 차례 더 인하했고 금융위기 이후 미국도 55%에서 40%로 대폭 내렸다. 일본은 55%로 최고세율이 높지만, 기업을 물려받는 후계자에게 상속세와 증여세를 유예하거나 면제하는 혜택을 주고 있다.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는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 성장과 자본시장 발전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R-L 모형을 토대로 혁신기업의 상속세 감면 효과를 분석한 파이터치연구원에 따르면 상속세 100% 감면 시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6조원, 일자리는 3만 개 늘어난다. 총 실질자본은 무려 211조원 늘어나 증시 부양 효과가 큰 점이 주목된다. 혁신기업이란 연구개발비 5년 평균치가 해당 업종의 5년 평균치를 초과하는 기업을 뜻한다.

과도한 상속세율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난제인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을 약화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상속세가 양도소득세(27.5%)의 두 배 이상이다 보니 기업을 물려주는 것보다 매각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업력이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우리나라는 17곳에 불과하다. 3만7087개에 달하는 일본의 200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200년 넘은 장수기업의 경우 일본은 1388개에 달하지만 우리는 한 곳도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기업 밸류업 대책에도 높은 상속세율은 최대 장애물이다. 최대주주가 주주환원율을 높이기 위해 주가를 끌어올릴수록 상속세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기업승계를 희망하는 2~3세는 높은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가를 억눌러야 하는 상황이다.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면 투명성이 제고되고 고성장·고부가가치 업종으로의 전환도 빨라진다. 주가 저평가 요인이 해소되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세금 감면에 가장 보수적이던 영국이 상속세 폐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데도 우리 여야와 국회는 상속세 개편안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다. ‘상속세를 잘못 건드리면 헌법보다 더 무섭다’는 국민 정서법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

4·10 총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상속세 감면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상속세 감면이 수권 정당으로 인정받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더할 나위 없다. 3년 후 치러질 대선에서 국민의 표를 받을 다른 어떤 방안보다 이만한 카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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