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뜰레 오른 K-브레이킹, 파리 청년들은 열광했다

파리 공연 명소 샤뜰레 극장에 현지 청년 몰려
韓-佛 합동 브레이킹 공연에 열광

올림픽 앞두고 열린 '코리아 시즌' 개막공연
유인촌 “한국 문화와 예술 전세계가 경험하길”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샤뜰레 극장이 한국과 프랑스 댄스팀이 브레이킹 공연 관람객으로 꽉 차 있는 모습. /문체부
프랑스 파리 1구 샤뜰레 광장에 자리 잡은 ‘떼아트르 드 샤뜰레’(Théâtre du Chatelet·)는 예술의 도시 파리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극장이다. 1862년 처음 막을 올린 이후 150여년 간 최고 수준의 오페라, 클래식, 무용, 뮤지컬 공연이 열렸다. 낭만주의 거장 구스타프 말러의 지휘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첫 해외 공연을 한 장소도 바로 이곳. 국내에선 소프라노 조수미가 2006년 팬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 장례식 대신 독창회를 섰던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2일(현지 시각) 오후 7시가 되자 샤뜰레 극장 앞은 젊은 프랑스 청년들의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오랜 샤뜰레 역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젊은 장르의 공연인 ‘브레이킹’을 보러 온 관람객들이다. 설렘 가득한 표정을 한 이들에게선 이따금씩 한국어도 들렸다. 이날 샤뜰레 무대에 오르는 예술가가 바로 한국의 유명 댄스그룹 원밀리언이기 때문이다. K-컬쳐에 매료된 프랑스 젊은 세대에겐 유명 K팝의 안무를 만든 원밀리언 역시 동시대 예술을 이끄는 무용가인 셈이다.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샤뜰레 극장 앞에서 한국과 프랑스 댄스팀의 브레이킹 합동공연 관람을 위해 대기하는 프랑스 청년들의 모습. /유승목 기자
이날 원밀리언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댄스그룹인 ‘포케몬 크루’와 함께 배틀 형식의 브레이킹 합동 공연 ‘어번 펄스 업라이징(Urban Pulse Uprising)’을 펼쳤다. 29유로(약 4만 2400원)의 적지 않은 푯값에도 시야 제한석을 제외한 1687석을 모두 채울 만큼 인기를 끌었다.

파리를 대표하는 공연장이 거리 예술로 불리던 브레이킹 댄스를 받아들인 것과 공연 주인공이 한국에서 온 댄스팀이라는 점에서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리야드 프가니 포케몬 크루 예술감독은 “샤뜰레는 문화 엘리트에 한정됐던 공간이었다”면서 “대중문화인 힙합, 나아가 K팝이 공연된다는 게 일부에서 모두에게로 열리는 아름다운 메시지라 생각한다”고 했다.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샤뜰레 극장에서 한국과 프랑스 댄스팀이 브레이킹 공연을 펼치고 있다. /문체부
이번 공연은 ‘2024 파리 올림픽’과 함께 진행되는 ‘문화 올림피아드’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의 ‘코리아시즌’을 여는 개막 행사다. 올림픽을 두 달 앞둔 이달부터 문화 올림피아드 관련 전시·공연이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등 17개 국내 문화예술기관이 참여해 34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코리아시즌은 문화 올림피아드 라벨을 받은 대표적인 올림픽 연계 문화행사다.특히 이날 공연은 파리올림픽에 브레이킹이 정식 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것을 계기로 열렸다. 젊은 감각이 돋보이고 역동적인 K-컬처 색깔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유명 무용가이자 문화 올림피아드를 총괄하는 도미닉 에르비유 감독은 “한국이 전통 안무뿐 아니라 브레이킹도 무척 잘한다는 걸 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공연 직전 만난 원밀리언 안무가 리아킴도 “비보잉이 신생 종목으로 열리는 곳에서 공연하게 돼 뜻깊다”면서 “한국이 이번 올림픽 메달에 가깝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샤뜰레 극장에서 한국 댄스팀 원밀리언이 브레이킹 공연을 펼치고 있다. /문체부
이날 공연은 기존 샤뜰레에서 열렸던 공연들과는 관람 문법 자체가 달랐다. 프랑스 청년들은 엄숙한 극장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시종일관 뛰고 소리 지르는 ‘관크’(관객 크리티컬·관람 방해 행위)를 벌이면서도 즐거워했다. 원밀리언이 유명 아이돌의 K팝 노래에 맞춰 춤을 추자 따라 불렀고, 태극기를 그린 옷을 입고 나온 포케몬 크루에 환호하기도 했다.

공연을 관람한 20대 프랑스인 리오주씨는 “프랑스와 한국 힙동 공연을 보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면서 “앞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 일아보고 싶어졌다”라고 말했다. 현장을 찾은 문체부 관계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아 놀라웠다”고 했다.
2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샤뜰레 극장에서 열린 한국과 프랑스 브레이킹 댄스팀의 합동 공연의 모습. 이 공연은 파리 문화 올림피아드 일환으로 진행되는 코리아시즌의 개막 공연으로 현지에서 관심을 모았다.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에는 프랑스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국내 예술가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자크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유인촌 문체부 장관과 인사를 나눴고, 권옥연 화백의 딸인 재불 예술가 권이나 화백도 객석을 채웠다. 권 화백은 유 장관이 ‘햄릿’ 파리 공연할 당시 무대의상을 제작한 이병복 무대디자이너의 딸이란 인연이 있다. “문화 도시 파리에서 열리는 문화 올림피아드 프로그램으로 코리아시즌을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힌 유 장관은 공연 도중 객석에서 일어나 안무를 따라 추기도 했다.문체부는 개막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 전통 월드음악 공연, 국립오페라단·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국립합창단의 창작오페라 ‘처용’, 한국 도예전시, K-관광로드쇼 등 올림픽을 앞둔 파리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코리아시즌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유 장관은 “한국문화의 모든 것을 프랑스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면서 “올림픽 선수단과 관광객 모두가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파리=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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