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제국' 하이브 뒤흔든 내분…문제는 '한지붕 11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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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인사이트]
하이브 고속성장 이끈 '멀티레이블'
타깃 겹치고,콘셉트 충돌 쉬워
"레이블별 실력있는 프로듀서 키워고
독립성·성과 보장해줄 방법 찾아야
엔터업계에서는 양측 주장의 진위와 별개로 “곪아 있던 문제가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민 대표가 간담회에서 “하이브 경영진이 뉴진스를 ‘서자(庶子)’ 취급하고, 방시혁 의장이 프로듀싱하는 레이블의 아티스트를 밀어주는 ‘군대 축구’식 경영을 했다”는 취지의 불만을 제기한 배경에 하이브가 도입한 ‘멀티레이블’ 체제에 내재된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하이브, 고속 성장 이끈 ‘멀티 레이블’
레이블은 음반을 만들고 유통하는 회사를 의미하지만 국내에서는 아티스트의 소속사 개념으로 혼용된다.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사업과 음악 제작이 함께 가는 K팝 특유의 구조 때문이다. 멀티레이블은 이런 레이블을 모기업 아래에 자회사 형태로 여러 개 두는 체제다. ‘지방자치제’에 비유할 수 있다.2020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하이브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 및 신설을 통해 산하에 11개의 레이블을 자회사로 뒀다. 국내 엔터업계 후발주자인 하이브가 에스엠, JYP, 와이지엔터를 제치고 업계 1위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데는 멀티레이블 체제가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스엠·JYP도 하이브 벤치마킹
K팝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멀티레이블 체제는 확대하는 추세다. 에스엠, 와이지엔터, JYP는 각 회사 수장이 모든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멀티레이블 방식을 점차 도입하고 있다. 양현석 대표 중심으로 가는 와이지엔터를 제외하면 에스엠과 JYP는 하이브 같은 자회사 형태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했다.일찍부터 적용한 것은 JYP다. 과거 2PM, 원더걸스 등의 노래를 들어보면 도입부 상당수에 박진영 대표의 음성으로 된 ‘제이와이피’ 피처링이 들어갔지만 최근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회사는 일찍부터 박진영 1인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여러 제작 본부를 운영하며 아티스트의 다양한 색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에는 JYP 내에 독립적인 본부인 ‘스튜디오 제이(STUDIO J)’를 설립해 밴드 특화 아티스트를 육성하고 있다.에스엠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지금은 카카오엔터에 인수된 에스엠은 지난해 ‘SM 3.0’을 발표하며 이수만 전 총괄 중심으로 진행하던 앨범 제작 방식에서 프로덕션 방식으로 전환했다. 전설적인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린 이수만이었지만, 막판에는 그 역시 ‘감 떨어졌다’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아야 했다. 결국 에스엠은 장장 34년간 이어진 ‘이수만 시대’를 끝내고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했다. 에스엠 관계자는 “사내에 여러 제작센터를 두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멀티레이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연착륙 단계”라고 했다.
한국형 멀티레이블의 아킬레스건
문제는 역사가 짧고 외연이 한정적인 K팝 특성상 멀티레이블의 장점을 누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멀티레이블이) 레이블마다 장르나 색이 다르면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아이돌 중심의 K팝 시장에서는 충돌이 일어나기 쉽다”고 지적한다.하이브는 최근 3년 내 세 개 이상의 걸그룹을 론칭했다. 뉴진스(어도어), 르세라핌(쏘스뮤직), 아일릿(빌리프랩) 모두 하이브 지붕 아래 각기 다른 가족(레이블)이 선보인 아티스트들인 만큼 내부 경쟁이 치열해지기 쉽다.
카카오엔터는 하이브와 비슷한 멀티레이블 구조를 갖췄지만 구성이 다채롭다. 카카오엔터(뮤직 부문)에는 아이유가 소속된 이담엔터를 비롯해 걸그룹 아이브가 소속된 스타십엔터, 유희열이 설립한 안테나뮤직 등의 레이블이 있다. 아이돌그룹, 인디, 솔로 아티스트들이 고루 섞여 있어 컨셉이 겹치거나 경쟁할 일이 하이브에 비해 적다.
“레이블 독립성과 고유성 살려야”
음악산업의 역사가 긴 서구는 멀티레이블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혀 있다. 실력 있는 아티스트와 뜻이 맞는 레이블 회사가 만나 음반을 내고, 성공을 거두면 다른 아티스트를 영입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워너뮤직(WMG), 유니버설뮤직(UMG), 소니뮤직(SME)과 같은 대형 모회사가 이들을 흡수했다. 이상민 음악 큐레이터는 “각 레이블만의 경영과 마케팅 방식 등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레거시가 있어 각자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이를테면 유니버설뮤직 산하의 아일랜드 레코드는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를 배출했고 에이미 와인하우스, 뮤즈 등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의 음반을 발매했다. 마이크 올드필드, 섹스 피스톨즈 등의 전설적인 음반을 낸 버진 레코드도 록을 비롯한 대중음악 분야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 맞는 멀티레이블 체제를 위해 전문가들은 “각 레이블의 독립성과 고유성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하이브의 경우 방시혁 의장이 프로듀싱에서 손을 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김 평론가는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지속하다 보면 일부 스타 프로듀서를 둔 레이블을 제외하면 그의 색대로 따라가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역량 있는 프로듀서를 영입하고 키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개별 레이블의 고유한 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멀티레이블이 잘 작동하려면 각자 레이블만의 음악과 아티스트를 보여줘야 한다”며 “실력 있는 대표 프로듀서를 키우고 그들의 색을 존중해야 K팝에서도 다양한 IP(지식재산권)와 음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 평론가는 “단순히 ‘요즘 대세’를 따라가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성을 장려하는 것이 K팝의 지속가능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