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가스통 협박' 딛고 새해 카운트다운 명소로 탈바꿈한 DDP

"보상도 똑바로 안 해 주고, 이대로 나가라고 하면 확 가스통 터뜨려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쇼!"

지금은 샤넬과 루이비통, 새해 카운트다운을 논하는 명소가 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2008년까지만 해도 노점상 1000여곳이 들어선 '풍물시장'이었다.
풍물시장과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시절의 동대문운동장 모습. /나무위키

80년 된 동대문운동장, 허물기도 쉽지 않았다

연배 있는 이들은 아직도 이곳을 ‘동대문운동장’으로 기억한다. 일제시대 때인 1925년 지어진 이 경기장은 축구 야구 달리기 등 다양한 목적의 경기와 행사에 활용됐다. 럭키금성(현 FC서울)이 경기를 한 적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80년 된 운동장의 안전성 문제가 커져 철거를 결정했고, 2003년 주 경기장이 폐쇄됐다.

경기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이 공간은 한동안 정체성을 잃고 주차장으로 쓰이는 데 그쳤다. 2002년 청계천을 개발하면서 이 일대 노점상을 전부 동대문운동장에 몰아넣기로 했다. ‘동대문 풍물 벼룩시장’에 밀려 들어온 노점상은 1000곳을 훨씬 넘었다. 당시 서울시에서 이 문제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운동장은 물론이고 스탠드까지 전부 노점상 천막으로 들어찼다”며 “동대문 옆부터 국립극장까지 전부 노점이 뒤덮어 기존 상권까지 다 죽는 상황이 됐다”고 회고했다.
동대문운동장 철거 계획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경향신문
‘동대문에 디자인 명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된 것은 2006년이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후보 시절부터 공약한 ‘디자인플라자’ 조성 부지로 동대문운동장이 낙점됐다. 그러나 당시엔 “자본 중심 논리에 역사적 건축물을 부순다”거나 “역사적인 장소인 만큼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해서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런 가운데 새 공간에 대한 현상 설계 공모에서 영국 건축가 고(故)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이 2007년 당선됐다.
자하 하디드 건축가가 최초 서울시에 제안한 DDP 디자인 '환유의 풍경.

전 박원순 시장 때는 '주민영웅의 공간' 활용

그림은 그렸지만 이 그림을 실행하려면 당장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노점상들이 문제였다. 서울시에서 이 문제를 담당한 것이 방태원 전 동대문구청장 권한대행(당시 건설행정과장)이다. 방 전 권한대행은 "가스통을 한 두개가 아니라 잔뜩 쌓아놓고 불 붙이겠다고 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정말 말도 아니었다"고 했다.
설득하는 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상가 찾아가고 자녀 혼사에 찾아가고 술 마시고 하면서 순전히 마음으로 설득한 것"이라며 "돈으로 보상하지 않고 신설동에 멋진 자리를 만들어서 내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 노점상들이 이전한 공간이 현재 신설동 풍물시장(2008년)이다. 이 때 동대문운동장에 있던 노점상 외에 종각~동대문에 이르는 구간의 모든 노점상이 일제히 정비됐다. 방 전 권한대행은 "시에서 허가한 가판대를 만들고, 24시간 장사를 금지하고, 점용료를 내는 정책 등이 모두 이때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있던 이대동대문병원은 이대목동병원으로 통합 이전했고, 야구협회에서 동대문 야구장을 살려달라는 요청이 빗발친 결과 고척 돔구장이 신설됐다. 모두 동대문운동장의 DDP 개발이 미친 ‘나비효과’다. 운동장 아래에 묻혀 있던 이간수문도 이때 발굴되어 복원됐다. 남산에서 내려오던 물길이 청계천으로 흘러가던 수문이다.
DDP 공사현장
DDP는 4만5000여장의 패널의 곡률이 모두 달라 공사 과정에서 난항이 많았다. 비용이 많이 든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2011년 DDP 공사 현장을 방문한 오세훈 시장(왼쪽 두 번째). /서울시 제공
이후에도 DDP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았다. 두 번째 난관은 지자체장의 교체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11년 무상급식 이슈로 갑자기 물러나게 되면서 후임으로 들어온 박원순 시장은 5000억원이라는 큰 돈을 써서 만든 DDP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를 진행 중인데 비용 지출을 줄이라고 지시해 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박 시장은 2012년 '세계 디자인 메카'라는 비전 대신 '함께 만들고 누리는 디자인'을 내세워 DDP를 바꾸자고 했다.

이 시기 DDP는 1층에 도서관을 만들고, 청년 벤처기업과 주민영웅 등 시민 성공담을 담은 수집품을 전시하는 장소로 활용됐다. 2층에는 소재체험센터를 만들어 동대문의 봉제업을 시민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했다. 3층에는 디자이너스룸으로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도록 했다. 물론 이 기간에도 샤넬의 패션쇼를 비롯해 각종 행사와 전시가 진행됐다. 그러나 그러한 전시를 제외하고 나면, 평소의 DDP가 시민들에게 미치는 인상은 세련된 외관과 소박한 내용물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021년 오세훈 시장이 '2기 시장'으로 다시 부임하게 되었을 때 오 시장은 DDP의 활력을 되찾는 문제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는 게 서울시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시장직을 떠난 시간 동안 공들인 DDP가 '망가지는' 것을 많이 안타까워 했다"는 후문이다. 서울시는 서울디자인재단은 물론 서울경제진흥원(SBA)까지 DDP 운영에 참여시켜 다양한 활용법을 모색했다.

작년 연말 새해 카운트다운을 포함한 서울콘 진행 등의 성과도 거뒀다. 서울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미디어 아트를 활용해 DDP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관광객의 눈길을 끌겠다는 계획도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는 DDP를 중심으로 한 동대문 일대를 정비하면서 이곳에 그동안 부족하다는 지목을 받아 온 5성급 호텔 등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의 ‘화려한 DDP’에서는 보이지 않는 뒷이야기가 많은 공간”이라고 했다.
2023년 말 새해 카운트다운을 앞둔 DDP 일대에 펼쳐진 꽃무늬 콘셉트의 '서울라이트'.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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