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헬라세포'에 해답 숨어있다

세포 무한증식 억제의 비밀

염색체 보호 장치인 '텔로미어'
단축시키면 암 분열 멈추고 사멸
세계 생물학 연구실에서 가장 폭넓게 활용되는 ‘헬라(HeLa)세포’는 불멸의 세포주로 불린다.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숨진 미국 여성 헨리에타 랙스의 암 조직에서 채취한 지 70년이 지났지만 수만 번 분열을 반복하면서 아직도 증식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세계 과학자들은 이 세포를 활용해 소아마비 백신,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등을 개발했다. 일정 횟수만 분열·증식한 뒤 사멸하는 정상세포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헬라세포는 암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전적 결함 탓에 돌연변이가 생긴 암세포는 강한 생명력을 지녔다. 공격적으로 여기저기 퍼지며 정상세포까지 망가뜨린다. 세포의 주인인 랙스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말기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지 8개월 만에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암세포만 남아 죽지도 늙지도 않는 ‘불로불사’의 생명력으로 100세 넘는 생을 이어가고 있다. 암 정복이 쉽지 않은 이유다.과학자들은 무한히 증식하는 암세포의 비밀을 ‘텔로미어’에서 찾았다. DNA의 이중나선 끝부분에 있는 텔로미어는 염색체를 보호하는 안전모로도 불린다. 텔로미어가 길수록 세포 수명은 길어진다. 건강한 세포는 분열·증식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짧아진다. 계속 짧아지다가 보호 기능을 상실하면 주변 면역세포가 없애거나 스스로 죽는다. ‘세포 자멸’이다. 세포는 증식을 많이 하면 돌연변이가 생길 위험이 커진다. 불량품을 막기 위한 방어 기능이다.

헬라세포와 암세포는 이와는 반대다. 텔로미어를 복구하는 텔로머라아제 효소가 만들어져 길이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아 무한증식 가능한 세포로 인류 곁에 남아 있다는 의미다.

이론적으론 암세포 유전자의 텔로미어를 단축시키면 암 수명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정상세포의 텔로미어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의 텔로미어만 건드리는 기술 개발이 쉽지 않다. 반대로 보면 이를 활용해 영생의 해답도 찾을 수 있다. 무한증식 속성을 활용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어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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