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악장' 카시모토 "무겁고 강렬한 색채로 '슈만·브람스' 들려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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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하모닉 악장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빈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최고 악단’ 타이틀을 두고 다투는 명문 악단이다. 이런 오케스트라에서 전체 악기군의 장(長)을 뜻하는 ‘악장’ 자리에 앉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베를린 필은 음색, 기교, 리듬감, 앙상블 역량 등 연주력을 가늠할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깐깐한 심사를 거쳐 최적의 바이올리니스트를 악장으로 선발한다. 그래서 ‘베를린 필 악장’이라고 하면 그 외의 다른 수식어가 구태여 필요하지 않다.
다이신 카시모토 단독 인터뷰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리사이틀
피아니스트 에릭 르 사쥬와 호흡
"사랑·경쟁·존경 등 복잡한 감정선…
깊이 파고들어 짙은 여운 남기겠다"
2009년부터 베를린 필 악장 자리를 지켜온 영국 태생의 일본계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신 카시모토(45)는 ‘국제적 명성의 전문 솔리스트’ 못지않은 독주 실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2013년엔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 필의 협연자로 발탁됐고, 2022년엔 파비오 루이지 지휘의 달라스 심포니와 협연한 데 이어 지난해엔 베를린 필(파보 예르비 지휘)의 토시오 호소카와 바이올린 협주곡 ‘기도’ 세계 초연 무대에 당당히 솔리스트로 올랐을 정도다. 여기에 베를린 필 옥텟(8중주단)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내한 리사이틀을 앞둔 카시모토가 한국경제신문 아르떼와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자신을 ‘상당히 운이 좋은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소개했다. “베를린 필 악장,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 가운데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잖아요. 때론 피곤할 때도 있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이기에 어느 하나 포기할 수가 없어요. 무대에 홀로 섰을 땐 표현의 자유로움을, 다른 이들과 호흡하는 실내악에선 새로운 영감을 얻어요.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에서 최적의 음악적 균형점을 찾을 땐 엄청난 희열을 느낍니다. 이를 다 누릴 수 있는 건 연주자로서 분명 큰 행운이죠.”
이번 공연에서 그는 프랑스 피아니스트 에릭 르 사쥬(60)와 함께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슈만·브람스·디트리히의 ‘F.A.E 소나타’, 클라라 슈만 ‘3개의 로망스’, 로베르트 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들려준다. 그는 “우리의 공연엔 '에피타이저' 따윈 없다”고 했다. “로망스가 그나마 청중에게 숨 쉴 틈을 주겠지만, 그마저도 힘들 겁니다. 모든 작품이 아주 무겁고 강렬한 악상을 내뿜거든요. 끊임없이 등장하는 ‘메인 디시’에 잠시도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는 시간이 될 겁니다."그는 "끈끈한 사제지간이었던 슈만과 브람스의 삶을 음악으로 들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두 작곡가 사이엔 사랑과 경쟁, 질투, 존경 등 다양한 감정이 자리하고 있어요. 이들은 한 가족과 다름없었습니다. 수많은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죠.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으면서도 근본적으론 완전히 다른 이들의 음악을 깊이 파고들어 청중에게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짙은 여운을 남기고 싶습니다.” 카시모토는 7세 나이로 미국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역대 최연소 입학한 뒤, 메뉴인 주니어 국제 콩쿠르(1993년), 쾰른 바이올린 콩쿠르(1994년), 프리츠 크라이슬러 국제 콩쿠르(1996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1996년)에서 우승한 전형적인 ‘영재 출신’ 연주자다. 솔리스트의 길을 걷던 그가 베를린 필 악장 자리에 앉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살면서 ‘악장이 되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지인이자 베를린 필 전임 악장이었던 브라운슈타인의 권유로 오디션을 봤고, 이후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베를린 필 악장으로의 경험이 제 음악적 역량을 크게 끌어올렸다고 생각해요. 많은 연주 기회를 얻었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저명한 지휘자들과 호흡하면서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법을 익힐 수 있었으니까요.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귀한 경험들이죠.”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사실 최종 목적지는 정하고 싶지 않아요. 음악가로서 마침표를 찍는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하나 바랄 수 있다면 매 순간 온 힘을 다해 연주하고, 청중에게 항상 확신에 찬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언젠간 제 연주를 통해 작곡가의 목소리가 생생히 전달되고, 솔직한 제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제게 그것보다 더 멋진 일은 없을 겁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