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정부가 가격 압박?"…공개 실토한 롯데칠성 [관가 포커스]

지난 17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롯데칠성음료의 소주제품인 처음처럼·새로. 연합뉴스
“연내 주류 가격 인상 계획은 없습니다. 구체적인 인상 시점과 인상률 등은 조만간 발표할 예정입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

일요일인 지난 17일 오전 국내 대표 주류업체인 롯데칠성음료가 자사 소주 제품인 ‘처음처럼’과 ‘새로’ 공장 출고가를 7%가량 인상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주 출고가 인상계획을 수일 내 공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출고가 인상은 통상 공지 시점에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나 이뤄진다는 점에서 연내 가격 인상을 예고한 것이다. 원자재값 등 원가 압박 때문에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었다.공교롭게도 같은 날 국세청은 주세 과세기준을 낮춰 내달 1일부터 국산 소주 출고가를 10.6%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기준판매비율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일 기준판매비율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주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각각 입법예고한 데 따른 후속 대책이다.

국세청은 국산 소주의 기준판매비율을 22.0%로 정했다. 기준판매비율은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을 정할 때 적용하는 비율을 뜻한다. 일종의 할인율로, 원가에서 기준판매비율분만큼 액수를 뺀 나머지가 과세표준이 된다. 이번 결정에 따라 내년 1월부터 22.0%의 기준판매비율이 적용돼 참이슬(360mL) 한 병의 출고가는 현행 1247원에서 1115원으로 10.6% 인하된다.

정부가 서민 부담을 낮추기 위해 소주 출고가를 10.6% 인하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날 공교롭게도 롯데칠성이 소주 인상 계획을 시사한 것이다. 물가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와 주류 행정을 담당하는 국세청 입장에선 롯데칠성이 이른바 재를 뿌린 것으로 여길 수 있는 대목이다.다만 롯데칠성의 소주 출고가 인상은 예상된 수순이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회사는 지난 7일 열린 기관투자자 대상 IR(기업 설명회)에서 수익성 강화를 위해 연내 가격 인상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IR 관계자는 “총선이 내년 4월에 있다 보니 가격 인상을 자제하거나, 인상 타이밍을 늦춰달라는 요청이 많다”며 “그럼에도 어떻게든 연내 가격 인상을 위해 정부와 계속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칠성 관계자가 투자자들에게 정부의 가격 압박이 있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특히 정부의 물가 관리 목표가 ‘서민생활 안정’보다는 ‘총선’ 때문이라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었다. IR 직후 정부 관계부처는 롯데칠성 관계자들과 긴급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에서 롯데칠성 담당 임원은 IR 관계자의 실언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측 공식 입장이 아니라 IR 관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연내 소주 출고가 인상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문제는 기준판매비율 도입을 통해 내년부터 소주 출고가 가격이 낮아진다는 정부 발표를 앞두고 롯데칠성의 소줏값 인상 계획이 또다시 공개됐다는 점이다. 국세청을 비롯한 정부 관계부처는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다. 연내 가격 인상은 없다는 정부와의 약속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가격 인상을 앞두고 이른바 여론 ‘간 보기’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롯데칠성은 이날 오후 늦게서야 “연내 인상 계획은 없다”는 내용을 기자들에게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선 기준판매비율 도입을 앞두고 롯데칠성의 ‘판단 미스’였다고 보고 있다. 기준판매비율 도입으로 세금이 낮아져 내년부터 공장 출고가가 인하되는 상황에서 가만히만 있었어도 내년부터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칠성이 총선을 언급한 IR 발언에 이어 정부 공식발표에 사실상 재를 뿌리는 등 정부로부터 찍힐 수 있는 행동을 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기재부와 국세청 등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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