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걸치고 싶나요? 공예와 순수예술 경계 부순 ‘저스트 아트’展

25명 작가가 선보이는 설치예술과 장신구
'찍찍이' 파도와 꽃 등 신선한 아이디어 눈길
"공예는 기술? 온전한 예술로 받아들여져야"

오는 21일까지 플랫폼엘에서 전시
서울 논현동 플랫폼엘에서 열리고 있는 '저스트 아트: 비욘드 보더스' 전시에 설치된 김용주, 김수연, 윤순란 작가의 작품. /이선아 기자
좋은 예술품은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사람에 휩쓸려 '보는둥 마는둥' 급하게 볼 필요 없이, 사적인 공간에서 내가 원할 때마다 작품을 시간 들여 감상할 수 있으니까. 컬렉터들이 전시장에서 좋은 작품을 마주치면 사들이는 이유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컬렉터가 될 수는 없는 일. 돈도 돈이지만, 그 많은 작품들을 들여놓을 공간도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서울 논현동 플랫폼엘에서 열리고 있는 '저스트 아트: 비욘드 보더스'는 이런 점에서 특별한 전시다. 이곳에선 25명의 작가들이 각각 큰 설치예술품과 브로치·귀걸이 등 작은 공예품을 함께 전시한다. 흔한 장신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나하나 예술작품으로 분류해도 될 정도로 섬세하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데다 큼지막한 공간도 필요없다. 몸에 걸칠 수 있는 작품도 있으니. 초보 컬렉터에게 안성맞춤 같은 전시회인 셈이다.

◆'찍찍이'로 만든 파도와 꽃

김용주 작가 작품 /푸른문화재단 제공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김용주 작가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김 작가는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 테이프로 작품을 만든다. 한 겹 한 겹 쌓아올린 검붉은 벨크로 테이프는 거대한 파도가 돼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 옆에는 작은 꽃 모양 브로치들이 있다. 김 작가가 벨크로 테이프를 하나하나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같은 재료, 같은 기법으로 거대한 설치작품과 자그마한 장신구를 만들었다.
김용주 작가가 만든 브로치 /푸른문화재단 제공
그 옆에는 성인 키보다 큰 거인이 서 있다. 섬유공예가 윤순란이 천을 감싸서 만든 사람 모양의 설치작품이다. 가늘고 긴 사람 조각으로 인간의 고독을 다룬 '조각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처럼, 윤 작가도 이를 통해 '인간의 몸이란 무엇인가'란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설치작품을 통해 인간의 몸을 나타냈다면, 작은 브로치에선 몸의 일부분인 입만 다뤘다. 드레스를 만들 때 쓰는 오간자 섬유로 혀, 이빨 등 독특한 모양의 브로치를 선보였다.
윤순란 작가가 만든 브로치 /푸른문화재단 제공
공예 부문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로에베재단이 선택한 예술가 7명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이 전시의 매력이다. 로에베재단은 매년 전세계 최고 공예가 한 명을 뽑아 '로에베재단 공예상'을 수여하는데, 최종 후보 리스트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다.

올해 최종 후보에 올랐던 금속공예가 신혜림은 이번 전시에서 얇은 금속 선을 일일히 칠해 실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그걸 한 올 한 올 배치해 단색화를 만들었다. 2020년 최종 후보자였던 김계옥 작가는 구리선을 실처럼 뜨개질해서 3차원 오브제와 브로치를 만들었다. 얼기설기 얽힌 얇은 선을 통해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피부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신혜림 작가 작품 /푸른문화재단 제공

◆"공예는 기술일 뿐? 그저 예술!"

이 전시가 의미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공예를 순수미술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열렸다는 점이다. 지금껏 공예는 '순수미술보다 한 수 아래'란 취급을 받아왔다. 순수미술은 '오로지 예술을 위한 예술'이지만, 공예는 그저 '실생활 물건을 예쁘게 꾸미는 기술'이란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전시를 기획한 구혜원 푸른문화재단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공예가 단순히 예쁜 장식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순수미술처럼 깊은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계옥 작가 작품 /푸른문화재단 제공
전시 제목이 '저스트 아트'인 이유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그저, 예술'. 공예를 단순한 장식 기술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공예도 온전한 예술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저스트'(Just)에는 '공정한'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구 이사장은 "공예와 순수미술을 수직적인 위계 관계로 보기보다는 각 예술가들의 작업이 오로지 예술적 가치에 따라 평가 받는 공정한 예술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배주현 작가 작품 설치 전경 /이선아 기자
전시는 12월 21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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