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파니와 함께 50분을 기다리면, '환희의 합창'이 터져나온다

[arte]이은아의 머글과 덕후 사이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건, 한 달에 한 번 이상 연주회장을 찾는 '덕후'건, 모두를 매료시키는 교향곡이 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흔히 ‘합창'으로 불리는 곡이다.

누군가 “그 곡이 뭔데?”라고 물으면 “미미파솔 솔파미레”만 흥얼거려주면 된다. 단박에 “아! 그 노래!”란 답을 들을 수 있다. 찬송가, 가톨릭 성가, 팝, 가요 등 수많은 음악에 등장하고 심지어 유럽 연합의 국가(國歌)이기도 한 ‘그 노래’의 이름은 “환희의 송가"이고,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에서 등장한다.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악전고투하며 작곡한 이 장대한 교향곡은 연대와 인류애를 ‘합창'하며 완성된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이 서사는 이 곡을 단순한 교향곡을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과 의지를 상징하는 창작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심지어 태양계 밖 거대한 별과 별 사이를 유영하고 있는 ‘보이저 1호'에도 실려갔으니 명실상부 인류를 대표하는 음악이다.

이 곡은 극강의 인지도만큼이나 크고 아름다워 아무리 빨리 연주해도 연주시간이 한 시간 이상 필요한 긴 곡이다. 교향곡 중 최대의 악기 편성에다가 혼성 4부 합창단 약 200여명이 필요하고 독창을 맡을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도 등장한다. 여러모로 위대한 이 곡이 독특하게도 한국에서는 매년 연말 연례행사처럼 연주돼 한 해의 고단했던 여정을 마무리할 일종의 ‘리추얼' 역할을 겸한다.

머글이자 덕후로서 2012년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연주(연주는 실황 음반으로도 발매됐다)를 접한 이래 매년 합창 교향곡으로 한 해를 마무리해왔다. 2015년에는 네덜란드의 로열콘세르트허바우가 내한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이유로 합창을 두번이나 들었다. 그 해는 정명훈이 서울시향의 음악감독으로서는 마지막으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한 해이기도 하다.2019년에는 연이틀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같은 곡을 들었다.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의 미니멀한 음악은 성악곡의 시작 부분 "오 친구여, 이런 소리가 아니다! 더욱 즐겁고 희망찬 노래를 부르자!”라는 가사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는지 합창 이전의 흐름과 합창 이후의 흐름이 완벽한 대조를 이루는 독특한 해석이었다.

연주 후 리셉션에서 마르쿠스 슈텐츠는 “모국어인 독일어로 아름다운 환희의 송가를 여기 서울에서 노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전했었다. 그 때 이후 언젠가 꼭 정통 독일식 합창 교향곡을 듣고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도쿄에서 들은 도쿄필하모닉의 합창 교향곡은 맥시멀리즘의 극치였다. 매 악장 비탄과 환희의 드라마가 너울졌고 합창단이 가사를 모두 외워 노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사진: 2019년 12월 19일-20일, 연 이틀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들었다
마르쿠스 슈텐츠의 특별한(?) 합창 교향곡은 2020년에도 찾아왔는데 코로나 팬데믹 시기여서 소규모 편성의 비대면 음악회로 유튜브를 통해 집에서(!) 들을 수 있었다. 터져나갈 듯 바글바글했던 무대는 거리두기 소편성으로 단출해졌고, 마스크를 쓴 채 독창을 하는 성악가들을 보는 것도 생경했다. 모두가 전례없는 감염병에 혼란해했던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희망을 노래하는 합창의 메시지가 더욱 간절했던 기억이 난다.Froh, wie seine Sonnen fliegen Durch des Himmels prächt'gen Plan,
환희여, 수 많은 별들이 천국의 영광스러운 계획을 따라 빛나는 창공을 가로지르듯

Laufet, Brüder eure Bahn, Laufet, Brüder eure Bahn,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달려라, 형제여, 그대들의 길을 가거라

Freudig, wie ein Held zum Siegen, wie ein Held zum Siegen.
영웅이 승리의 길을 달리듯이, 영웅이 환희에 찬 채로 승리의 길을 질주하듯Such' ihn über'm Sternenzelt!
별이 빛나는 하늘 저편에서 그를 찾으라!

Über Sternen muß er wohnen.
별의 저편에 그가 반드시 계실 것이다.
사진: 2020년 마르쿠스 슈텐츠와 서울시향의 코로나 비대면 합창 교향곡
올해 12월도 어김없이 베토벤의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합창' 교향곡이라 불리우지만 합창 부분은 4악장에만 나오고, ‘그 노래'가 나오기까지 약 50분간 음험하고, 장엄하고, 신비롭고, 시끄럽고, 때때로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릴것 같은 50분을 버텨야 한다는 점이다.

‘머글'이 50여분을 즐길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바로 팀파니다. 무대 가장 뒷쪽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팀파니스트를 주목해 보자. 강건한 팀파니의 사운드에 감상의 흐름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그 노래'의 순간이 오고, 콘서트장이 떠나갈 듯 한 혼성 4부 합창과 함께 신들의 불, 환희의 전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류가 성취한 빛나는 걸작, 베토벤 교향곡 9번으로 연말의 품격을 한층 더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