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가장 나쁜 사례가 있다면 SNS에 올리는 새해 계획표” [책마을]

파서블

김익한 지음
인플루엔셜
280쪽│1만8000원
연말연시마다 돌아오는 연례행사가 있다. 깨끗한 새 다이어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매년 이맘때면 '내년엔 달라져야지'라는 야심 찬 각오로 한 해 계획을 적어나간다. 직장 옆자리에서, 혹은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이 쓴 계획표를 자랑하는 동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한 달 이상 계속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니, 작심삼일이란 말처럼 3일을 버티기조차 버겁다. 게으름 때문에, 또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는 다짐은 무력감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내 인생을 바꿀 수는 없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출간된 <파서블>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외친다. 일 년 계획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의지의 문제도, 게으른 천성 탓도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기록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책은 "기록의 핵심은 '생각'과 '실행'에 있지만, 대부분의 기록은 둘 중 하나가 빠진 '낙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1호 기록학자'로 꼽히는 김익한 명지대 교수가 썼다. 지난 3월 출간된 베스트셀러 <거인의 노트>의 저자다. 이전 책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 설파했다면, 신간에선 이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을 담았다.

저자의 처방전은 '한 달 계획'이다. 25년 동안 꾸준히 기록을 남기며 내린 결론이다. 그는 "자신의 꿈과 연동되는 계획은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을 한 달"이라며 "기록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고, 루틴의 성취감도 매달 맛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라고 말한다.이어 한 달 다이어리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자신의 목표를 선언하고 일, 성장, 여가, 가족, 관계의 다섯 가지 분야에서 이뤄낼 과제를 메모하라고 조언한다. 한 달 단위의 계획을 촘촘히 세우고 나면, 이후 주간 계획, 일간 계획을 세울 때도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lt;파서블&gt;(김익한 지음, 인플루엔셜)
저자가 강조하는 기록의 핵심은 반복이다. "차이는 반복의 결과다"라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말처럼, 반복은 개인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동일한 악보로 연주해도 제각기 다른 완성도를 보이는 이유도 이러한 '반복의 차이' 때문이다.

기록은 단순한 '오늘 할 일'과는 달라야 한다.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과 자아실현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고루 반영해야 번아웃을 피할 수 있다. 어제와 오늘 사이 달라진 자기 모습도 글로 남겨야 한다. 저자는 "기록은 과거와 오늘의 차이를 감각적으로 구분하는 행위"라고 말한다.최악의 기록은 어떤 형태일까. 비현실적인 기록, 방법집착형 기록 등 악수들이 여럿 존재하지만, 저자는 '과시형 기록'을 최악으로 꼽는다. 기록의 내용이 아니라 외관을 꾸미는 데 열을 올리는 경우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한테 인정받으려고 SNS에 올리는 계획표가 여기 해당한다.

계획은 간단할수록 좋다고 했다. 다음 달 첫 단추로 '이 책 읽기'를 넣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선택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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