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정진규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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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어둠을 먹고 자랍니다. 정진규(1939~2017) 시인은 ‘별’에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노래했지요. 또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별은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빛난다는 의미이지요.

별들의 바탕인 우주는 실제로 어둡습니다. 광대한 우주 공간의 95% 이상이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로 이뤄져 있으니까요.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보통의 물질은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지구와 태양 등 ‘우리은하’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전체 에너지의 0.4%밖에 안 된다죠? <천자문>도 첫 문장에서 ‘하늘(天)은 검고(玄) 땅(地)은 누르다(黃)’고 했습니다.

모든 천체를 아우르는 우주(宇宙)는 넓고 커서 끝이 없지요. 한자로 ‘집 우(宇)’는 지붕과 처마처럼 넓고 큰 공간의 확대, ‘집 주(宙)’는 집의 기둥처럼 하늘과 땅을 떠받치는 시간의 격차를 뜻합니다. 이 시간과 공간을 포함해 천지간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이 곧 우주(space, the universe, the cosmos)이지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합니다. 이런 시공간의 변화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암흑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요. 빈센트 반 고흐는 죽기 전에 별을 많이 그렸습니다. 1888년 남프랑스 아를에서 그린 ‘밤의 카페테라스’에 여러 개의 별이 보이지요? 짙은 코발트블루 하늘에 박힌 별들은 얼핏 물병자리 같지만,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전갈자리입니다. 찰스 휘트니 하버드대 교수는 “그해 9월 고흐가 바라본 남서쪽 방향에 전갈자리가 있었고, 그 시점은 저녁 7시15분 무렵”이라고 말했죠.

같은 해 작품인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과 뭇별이 소용돌이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당시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거리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며 “별은 심장처럼 파닥거리며 계속 빛나고,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어요. 여기에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 나오는 장면은 어떤가요. 주인집 아가씨가 유성(流星)을 보며 “저게 뭘까” 하고 묻자 목동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다음에 이 소설의 결말이자 백미인 명문장이 나오지요.

‘몇 번이나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었노라고. 그리고 그 별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이럴 때 별은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순정한 ‘영혼의 빛’입니다. 우리가 이 명구에 밑줄을 긋는 것은 이토록 순수한 아름다움을 오래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은 또 어떤가요. 그는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 같은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을 새겨보다가 마침내 ‘어머니, 어머니’ 하고 사무치는 이름을 연거푸 부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너무 멀리 있어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둘 수밖에 없는 외로운 이름입니다.

윤동주가 ‘서시’에서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할 때 우리는 어젯밤과 내일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울 것을 압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그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며 자신을 추스를 때 우리 또한 궁극의 희망을 준비합니다. 그러므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지요. 어둠이 깊을수록 꿈의 질량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을 헤아리며 언약의 꿈을 키웠지요. 이렇듯 우리에게 별은 희망과 꿈의 총합입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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