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질감을 아는 언어실험가, 배명훈

[arte] 최지인의 탐나는 책
배명훈 소설집 『미래과거시제』(북하우스, 2023)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집에 서가를 꾸며놓은 사람이라면 한두 칸쯤은 있지 않을까? ‘최애의 서가.’ 나는 좋아하는 작가도, 미련도 많아서 꾸준히 좋아해온 작가뿐 아니라 어느 한 시절 빠져들었던 작가의 책까지도 여러 권 있는 경우가 많고, 보통 같은 저자의 책들을 같은 칸에 모아놓는 편이다. 예전에 회사가 가까울 때는 가끔 동료들이 집에 놀러 와 점심을 먹곤 했는데, 후배 중 한 명이 나의 책장을 보고 “와, 정말 한국 문학 편집자의 서재다”라고 감탄하면서도 놀린 적이 있다. 다른 분야의 책들도 적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한국 문학은 작가별로 책을 모아두어서 그런 것 같다고 부득부득 우겨보았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나의 내밀한 책장에 관해 한껏 늘어놓은 것은 그를 말하기 위함이다. 나의 서가에서 가장 잘 보이고 적당히 밝으면서도 표지가 바래지 않을 위치에는 배명훈 작가의 책들이 모여 있다. 유머러스한 문체와 견고한 세계관,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스타일을 갱신하면서 모험과 변화를 멈추지 않는 배명훈의 소설을 오랫동안 꾸준히 좋아해왔다. 편집자로서도 나에게 여러 번 뛰어난 원고를 보내주었을 뿐 아니라 깊은 응원과 많은 아이디어를 전해주었던 작가이기에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 Tyler Spaeth
그런 그가 7년 만에 세번째 소설집을 선보였다. 배명훈 작가의 모든 책을 담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좋아하는 단편이 한데 묶여 있기 때문에 무척 탐났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집에는 각기 다른 시기와 지면에 발표된 독립적인 이야기가 담겼지만, 그간 배명훈 소설의 궤적을 따라온 팬이라면 만나볼 수 있는 반가운 은경 씨도 있고, 『빙글빙글 우주군』의 팩맨 반사판과 연결되어 생각하게 되는 고이 접혀서 태양계에 닿은 외계인도 있다. 더하여 작가가 오래 천착한 언어 실험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이 특히 도드라져서, 팬데믹을 겪으며 침을 튀기지 않기 위해 파열음이 사라진 세계를 보여주는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나 로봇 조종술을 익히고도 일자리가 없어 먼 타국에 비정규직 조종사로 떠나는 하임의 이야기를 판소리체 중편으로 구성한 「임시 조종사」는 색다른 언어의 질감들을 경험하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특히 이 두 작품은 직접 낭독해보면 이 소설 안에서 감행된 언어 실험의 특별한 매력이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에 꼭 한번 목소리를 내어 읽어보기를 권한다.) 추천사에 “「임시 조종사」는 모든 국어 교과서와 한국어 교재에 수록되어야 한다”라고 감탄한 소설가 정보라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는 이 작품의 일부 대목을 판소리꾼 이자람이 직접 장단을 실어 부르는 것도 들어보았다고 이 지면을 틈타 자랑해보고 싶다.

지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고 인간적인 아홉 편의 중단편소설이 묶인 『미래과거시제』. 든든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최애의 책장에 한 권을 더 추가하며 작가가 앞으로 밀어붙일 새로운 시도들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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