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비 괴한' '안다박수꾼'...클래식 공연장의 훌리건을 막아라

[arte] 이현식의 클래식 환자의 병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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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브라비’를 외치는 무뢰한이 여린 엔딩의 감동을 짓밟아 오던 날을.

사변이 터진 것은 지난 9월15일 밤 만프레드 호넥(호네크) 지휘 서울시향 연주회에서였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의 끝음은 세상을 떠나는 이의 마지막 날숨처럼 여리다. 무대 위의 음악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마지막 음의 여운을 붙잡는 순간, 객석에서 ‘브라비!!’ 하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일부 청중이 멋모르고 따라서 박수를 치다가 공연장 전체에 차오르는 싸늘한 기운을 느끼고는 이내 손을 내렸다. 감동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유리그릇처럼 박살난 뒤였다.이런 박수와 환호는 많은 이들의 감동을 해친다. 왜 그런지는 필자의 이전 칼럼 「박수, 치지 말아주세요」 https://www.arte.co.kr/music/theme/1962에서 설명한 바 있으니 참고해주시면 좋겠다.

이날 ‘브라비!’를 외친 괴한은 ‘초짜’가 아니었다. 음악 좀 듣는다고 자부하는 자가 분명했다. 우선, 브라보를 외칠 대상이 남자냐 여자냐 복수냐에 따라 활용형이 달라진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흥분이 고조된 상태로 빰빰빰! 하고 끝나는 곡도 아니었다. 초짜 청중은 연주가 끝난건지 안끝난건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이 곡이 어떻게 끝나는지 잘 알아. 이 연주, 잘 한 연주라는 걸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이 나에게는 있어”라는 과시욕이 그의 외침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2000명 넘는 사람들의 팽팽한 침묵을 혼자만의 환호성으로 찢어버린다는 건 일종의 폭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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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한두 해 다닌 것도 아닌지라 웬만한 일에는 그러려니 하지만, 이날 이후 트라우마가 도졌다. 곡이 끝날라치면 불안감에 가슴이 쿵쿵 뛴다. 혹시나 또 말도 안되는 타이밍에 박수나 환호가 터질까봐서. 이런 트라우마를 진작부터 앓고 있는 애호가 중에는 아예 공연장에 발길을 끊은 사람도 있다.‘그래도 열정이 있는 팬이니까 저러는 거지, 좀 봐주자’는 온정적인 사고로 ‘브라비 괴한’같은 사람들을 감싸주면 안된다. 그러면 양화가 악화에 의해 구축된다. 프로축구나 프로야구가 좋은 예다. 팀을 응원하는 열정이 지나친 일부 골수 팬들이 술 마시고 욕설하고 물건 집어던지는 걸 유야무야 넘어가면 경기장은 일반인들이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그런 ‘훌리건’ 문제를 심하게 겪은 유럽 축구 구단들은 안면인식 기술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극성 훌리건의 경기장 진입을 막는다. 건전한 관람문화를 지키기 위해 일부 극성팬의 자유에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공연장들도 이런 접근법을 택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선, 무대 앞벽에 영사기로 안내 또는 경고 문구를 쏘는 것을 제안한다. 지휘자나 연주자가 손 내릴 때까지 박수 치지 말라고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안내방송은 연주 시작 전에 하는 것이고, 그때 뿐이다. ‘안다박수꾼’ ‘브라비 괴한’이 뭔가 저지를 시점에 ‘멈춰!’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관객이 홀에 들어갈 때 안내문을 적은 종이를 나눠주는 것도 제안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 메트 오페라에서는 인터미션 때 홀에서 나가는 관객들에게 작은 종이쪽지를 주고, 돌아올 때 회수한다. 티켓을 눈으로 확인하는 대신 그렇게 하는 것이다. 주요 출연진이 감기 등으로 바뀌었을 때는 변경된 출연진 안내를 종이에 프린트해 입장 관객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공연장들은 관람 매너에 관한 안내문을 입장시에 나눠줬다가 인터미션 끝날 때 회수하면 어떨까. 안내방송만 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크지 않을까. 비용도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몇십 원이 될지는 모르지만 티켓값에 얹겠다면 나는 낼 용의가 있다.

콘서트홀에서 안내와 계도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앳되어 보이는 젊은 여성인데,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큰 체구의 남성들도 활용하는 건 어떨까. 남들의 집중을 깨는 행위를 하는 ‘진상’ 관객들은 대체로 안내 직원들의 말을 들어먹지를 않고, 적반하장으로 대들기도 한다. 이럴때는 K팝 공연이나 클럽의 보안요원 (전문용어로 ‘기도’, 영어로는 ‘바운서’)같은 인력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웃자고 하는 얘기만은 아니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들을 해 봤겠나. 브라비 괴한이나 안다박수꾼들은 이런 칼럼도 읽지 않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뭔가 현장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 공연 감상문화, 옛날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더 나아질 수 있고, 나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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