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꽃길' 아니네…소송 늘고 사업비↑

잠원한신로얄, 안전진단 '고배'
대치2는 시공사에 배상 판결
1기 신도시선 사업철회 증가

사업기간 짧지만 변수 많아
안전성 검토 탈락, 공사비 상승 등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수도권 리모델링 단지가 늘어나고 있다. 시공사 계약이 해제된 서울 강남구 대치2단지. 한경DB
수도권 리모델링 아파트 투자 주의보가 내려졌다. 최근 안전성 검토 탈락과 공사비 상승 등으로 사업 추진이 좌초될 위기를 겪는 단지가 늘고 있어서다. 리모델링은 재건축·재개발에 비해 사업 추진이 빠르고, 중도 매매가 가능한 게 장점이다. 하지만 리모델링 단지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는 사례도 생기고 있는 만큼 사업 진행 상황과 공사비 등 변수를 주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안전진단 탈락·소송 등 리스크 많아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잠원동 ‘잠원한신로얄’은 최근 수직증축을 위한 2차 안전성 검토에 나섰지만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1992년 준공된 이 단지는 208가구 규모다. 2020년 수직증축 리모델링 기술을 적용하는 실증 단지로 선정되며 기대감을 모았다. 그러나 사업계획 단계에서 고배를 마시며 주민들 사이에선 재신청과 조합 청산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주민은 “일부에선 시공사와 계약을 해지할 때 내야 하는 변제금을 계산하고 있다”며 “가구당 수백만원을 내야 하는 탓에 해산과 재추진 사이에서 주민 의견이 분분하다”고 했다.

시공사와의 갈등 때문에 배상금을 지급하게 된 단지도 있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2단지 리모델링 조합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시공사업단에 112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한때 강남권 최대 규모 리모델링 단지로 주목받았지만 사업이 장기화하며 갈등이 커졌다. 2021년 6월 조합은 시공 계약 해제를 의결했다. 법원은 “건설사의 귀책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조합이 배상금을 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 조합원은 “시공사를 새로 구하면 배상금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지만 주변 단지들도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패소 이후 재건축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 리모델링 추진 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재건축 바람이 세지며 기존에 추진했던 리모델링 사업을 접는 단지가 늘고 있다. 경기 안양 평촌신도시에선 은하수마을 청구아파트와 샘마을대우, 한양아파트가 리모델링 철회를 결정했다. 고양 일산신도시도 일부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서 사업 철회 여부를 놓고 주민 간 갈등이 커졌다. 리모델링을 고려했던 일부 가구는 사업 철회 소식에 집단으로 매물을 내놓기도 했다.

투자 문턱 낮지만…사업성 살펴봐야

리모델링은 재건축이나 재개발에 비해 사업 속도가 빠르다. 준공 후 30년이 지나야 추진이 가능한 재건축과 달리 준공 후 15년만 지나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기부채납이나 공공임대주택 조건이 없어 인허가 절차도 비교적 단순하다. 조합 설립부터 준공까지 평균 10년이 걸리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5년 남짓이다. 게다가 기존에 용적률이 높은 소규모 단지 중심으로 추진되다 보니 사업성이 비교적 높다는 장점이 있다. 투자 측면에서는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되지 않고, 조합원 지위 승계 제한이 없어 사업 도중에도 매매를 통해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

유망 리모델링 단지는 거래도 활발한 편이다.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인 서초구 잠원동 동아아파트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11월 안전진단을 통과한 뒤 올해만 12건 거래됐다. 최근 리모델링 사업이 진척을 보이면서 거래가격은 지난달 25억5000만원까지 올랐다. 지난 2월(20억원)과 비교해 7개월 새 5억5000만원 뛴 셈이다.

그러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단지가 생겨나며 오히려 손해를 보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리모델링을 포기하고 재건축을 다시 추진하면 사업이 장기화하고 시공사와의 배상금 갈등으로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정비업계 관계자는 “수직증축 리모델링 사업은 실제 준공까지 이어진 사례가 거의 없다”며 “시세 차익과 새 아파트 장만에 앞서 사업 진행 상황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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