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철퇴'도 소용없었다…'갑질' 시달리는 한국 조선업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대법원이 프랑스 엔지니어링업체 GTT의 ‘사후서비스(AS) 구매 강요’에 제동을 건 지 5개월이 지났지만, 한국 조선사와의 계약 관행은 아직 바뀌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GTT 말고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을 생산하는 기업이 거의 없어 계약 내용을 수정하기 어려워서다. 그동안 GTT에 의존하느라 조선사들이 화물창 수리 기술을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대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 집행 정지를 요구한 GTT의 상고를 지난 4월 기각했다. GTT는 LNG 운반선의 필수인 화물창을 제조하는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하며 척당 제작비의 5%를 로열티로 받아왔다. LNG를 보관하는 화물창 제조 기술은 GTT 등 일부 기업만 보유하고 있다. 한국 조선사가 쓰는 GTT의 멤브레인 화물창은 글로벌 표준 화물창으로 통하기도 한다. 문제는 GTT가 기술 라이선스와 함께 자사를 통해서만 AS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대법원은 당시 판결을 통해 “GTT가 화물창 기술 라이선스를 계약하며 AS도 같이 구매하도록 ‘끼워팔기’를 했다”는 공정위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고도의 수리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GTT 본사에서 기술자를 파견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불공정 계약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사와 GTT의 계약 관행은 바뀌지 않았다. 멤브레인 화물창 기술을 제공하는 곳이 GTT뿐이라 대체할 기업이 없어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사가 GTT에 라이선스와 기술 지원을 분리해달라고 요청해야 하지만, 그렇게 요구한 기업이 한 곳도 없다”며 “각 사별로 내부 검토는 진행 중이지만 현재로선 대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GTT가 제공한 수리 서비스를 각 사가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GTT의 계약 관행이 2016년부터 이어진 터라 오히려 GTT에 수리를 맡기는 게 낫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

한국 조선사들은 미래 선박인 액화수소 운반선 등에서는 기술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화물창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7년 액화수소 화물창을 상용화하기 위해 인증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삼성중공업도 액화수소 화물창 개발에 한창이다. GTT 등 해외 기업 의존도를 낮추면 수익성이 높아지는 데다 국내 조선 기자재 업체에도 낙수 효과가 크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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