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00년 전만 해도 중국에 '漢族'은 없었다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

빌 헤이턴 지음 / 조율리 옮김
다산초당 / 500쪽 | 2만8000원

BBC 출신 아시아 전문가 저술

20세기 초 中 민족주의 지식인들
'5000년 역사 국가' 확립하려
한족이라는 개념 만들어내

만주족의 청나라가 확보한 땅은
중국 영토라고 설명하면서도
만주족은 한족과 다르다고 주장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 Getty Images Bank
2015년 홍콩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남성 5명이 실종됐다. ‘코즈웨이베이 서점 사건’이다. 이 중 한 명이 이듬해 홍콩에 돌아와 진상을 폭로했다. 금서 혐의로 중국 공안에 끌려가 구금돼 있었다고 했다. 끌려간 사람 중 2명은 각각 영국과 스웨덴 국적이었다. 국제적 반발이 일었지만 중국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국 국적을 가졌어도 본질적으로 중국인이라고 했다. 중국 땅에서 태어난 한족이라는 게 이유였다.

중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적을 포기해도 중국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한족’이라는 더 큰 개념으로 충성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애국심을 고취하고, 전 세계 한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지나친 ‘한족 중심주의’는 큰 문제다. 자국 내 소수 민족을 억압하는 데 쓰인다. 한족이 많이 사는 외국은 ‘중국 국민의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압력을 받고 있다.한족의 역사는 짧다. 불과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중국이 말하지 않는 중국>이 말하는 바다. 이 책은 20세기 초 중국의 민족주의적 지식인들이 어떻게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하나의 국가이자 민족’이라는 신화를 창조해 냈는지 파헤친다. 저자 빌 헤이턴은 2021년까지 BBC 기자로 일했다. 2006~2007년 베트남 특파원을 지낸 뒤 아시아 전문가가 됐다.

100여 년 전 지금의 중국 땅을 차지하고 있던 건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였다. 그 이전 한족이 세웠던 한, 당, 송, 명 등을 훨씬 뛰어넘는 드넓은 영토를 가졌다. 만주족을 중심으로 몽골인, 티베트인, 위구르인 등 다수의 민족이 연합한 다민족국가였다. 어떻게 하면 이를 중국의 역사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20세기 초 신해혁명을 일으켜 청나라를 멸망시킨 쑨원 등 당대 혁명가와 지식인들은 고민 끝에 한 가지 방안을 냈다. 역사를 자르고 붙여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은 중국 대륙이 여러 이민족의 침략을 받았지만 결국 한족 문화의 우월성에 동화됐다고 꾸며냈다. 한족이란 개념 자체도 새롭게 만들어 냈다. 학자이자 혁명가였던 장빈린은 기원전 2세기의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에서 해답을 얻었다. 중국 고대 전설 속 인물인 황제(黃帝) 헌원의 자손들이 한족이라고 정했다. 허술한 기준이지만 상관없었다. 만주족과 구별하기만 하면 됐다. 장빈린과 동료 혁명가들은 “한족이 가장 중요하며 만주족이 설 자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대만의 역사를 다룬 부분도 흥미롭다. 청나라는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에 서명해 대만과 인근 해역의 펑후 제도를 일본에 영구적으로 넘겼다. 대만 본토인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조약 서명 한 달 후 ‘타이완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에 저항했다. 일본군이 대만의 모든 도시를 점령하는 데 5개월, 반역자들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기까지 5년이 더 걸렸다.

이 기간 청은 저항 세력을 모른 척했다. 사실 이전부터 대만은 중국에 중요하지 않은 땅이었다. 야만스러운 원주민이 사는 곳이라 여겼다. 치명적인 질병으로 멀리해야 할 곳이었다. 이는 쑨원의 국민당도, 중국 공산당도 마찬가지였다. 공산당은 중국인과 대만인을 구분하며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기까지 했다.저자는 이런 역사를 돌아보며 시진핑의 ‘중국몽’이 가져올 파국을 우려한다. 현재 중국은 100년 전 민족주의 지식인들이 꾸며낸 역사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5000년 동안 세상을 호령하던 ‘한족 국가’ 중국이 아편전쟁 등 외세의 침략을 받아 고난을 겪었고, 이제 다시 중국이 위대한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시각이다.

남중국해, 대만, 티베트, 신장, 홍콩에서의 갈등이 모두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는 “유럽에서 국가를 민족이라는 틀에 맞추려는 시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며 “전 세계를 파멸시킬 뻔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처방”이라고 지적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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