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포비아라는 게 있대. 전화가 무서워서 안 받는 거야."

[arte] 문보영의 낯선 세계
*오늘은 필리핀 선생님 지나와 전화 통화를 했다. 그녀는 18살과 22살 자녀를 둔 싱글맘이다.

-물어볼 게 있어. 너 왜 전화를 잘 안 받아?
지나는 물었다.
-이상하다, 난 네 수업 처음 신청했는데... 혹시 내가 예전에 네 수업을 신청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어?
-그건 아니지만 기록이 있어서 볼 수 있거든.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을 많이도 빼먹었네~?
-이럴 수가. 이제 그 사실을 알았으니 앞으로 수업을 안 빼먹어야겠어... 사실 난 수업을 신청해놓고 전화를 놓치기 일쑤거든. 그게 미안해서 매번 다른 선생님의 수업을 신청해......
-괜찮아. 사실 난 전화를 안 받는 학생들을 좋아해.
-뭐?-난 내향적인 사람이거든... 전화를 걸 때마다 긴장해. 가끔은 주술을 외워. 받지 말아라...받지 말아라...
난 전화 영어 선생님들이 학생이 전화를 받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전화를 자주 놓치는 사람으로서 그녀의 고백이 약간 반갑기도 했다.
-나도 내향적이어서 전화를 잘 안 받아......
나는 답했다.
-잘했어. 그럼, 처음 만났으니 자기소개를 할까? 넌 무슨 일을 해?
-난 작가야. 지금은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아이오와에 있어.
-나도 예전에 글을 썼어.
-오? 정말? 너 작가야?
-아니, 비즈니스 라이팅. 은행에서 이메일이나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제안서 같은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했거든. 그런 걸 business writing, procedure writing이라고 해.

-정말 힘들었겠는데?
-근데 난 내향적인 사람이라서 고객을 대하는 것보다 이런 일이 더 잘 맞았어.
-그랬구나. 그럼, 그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데?
-콜센터에서 일했어.
지나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힘들었어?
-응. 그런데 영어가 늘었어.
-뭐? 필리핀 사람들은 원래 영어를 잘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사람마다 달라. 내 영어는 학교 교육과 콜센터에서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결과야. 미국 고객을 상담하는 콜센터에서 일했거든. 맨날 미국인들이랑 통화했어...
-그럼, 너도 전화영어한 거네.
그 말을 듣고 지나가 웃었다.
-그런 셈이지!
-전화받는 게 힘들다더니 콜센터에서도 일하고 지금은 전화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다니 대단해.
-응... 고마워.

-그거 알아? 통화 포비아라는 게 있대. 전화가 무서워서 안 받는 거야.
-내 생각엔 나 그 공포증이 있는 것 같아. 음, 내가 너무 전화 영어에 대해서 나쁜 말만 한 것 같네. 근데 어떤 통화는 정말 즐거워. 학생들의 나이가 천차만별이거든? 7살 꼬마도 있고 72세 노인도 있어.
-72!
-응. 한국인이야. 그는 아내의 옷 가게에서 일해. 근데 난 그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영어 때문이 아니라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그런데 내가 아는 건, 그가 아내의 옷 가게에 손님이 오지 않기를 은밀히 바란다는 거야. 자기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한대. 그와 몇 번의 통화를 했지만 내가 알아들은 건 그게 다야. 그리고 그는 노을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고 싶어했는데, 그 질문을 알아듣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
-노을이 영어로 뭔데?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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