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보다 70년 먼저 美휩쓴 걸그룹?…뮤지컬 '시스터즈'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K팝 걸그룹의 원조는 누구일까. 정답은 '원더걸스'도, '블랙핑크'도 아니다. 주인공은 1959년 아시아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한 걸그룹, 김숙자·애자·민자로 구성된 3인조 '김시스터즈'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시스터즈'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K팝 걸그룹의 역사를 파헤치는 쇼 뮤지컬이다. 공연 제작사 신시컴퍼니와 박칼린 연출 등이 제작에 참여한 창작 뮤지컬로, 이번이 초연이다.
극중 묘사되는 김시스터즈의 활약상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전쟁 중이던 1953년 결성돼 1959년 미국에 진출한 김시스터즈는 실제 자매 혹은 친척 사이였다. 이들은 라스베이거스에 진출한 몇년 후 주급 1만5000달러, 현재 가치로 약 1억7000만원을 받는 '대스타'로 성장한다. 당시 국내 1인당 국민소득이 2076달러였던 시절이었다.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유명 음악쇼에도 출연했다. 요즘 K팝 인기 걸그룹 못지 않은 활약이다.

작품은 김시스터즈를 비롯해 저고리시스터즈부터 이시스터즈, 코리아 키튼즈, 바니걸스, 희자매까지 역대 걸그룹의 역사를 차근차근 밟아 내려온다. 6개 걸그룹의 탄생과 성공 스토리 뒤로 실제 활동 당시의 사진이나 영상, 신문 등이 배경으로 흘러나오면서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울릉도 트위스트', '커피 한잔' 등 당대의 히트곡 무대를 재현하는 모습이 마치 콘서트같다.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2030세대에겐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뮤지컬이다. 실제로 공연장은 다른 뮤지컬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으로 가득찼다. 각 걸그룹의 탄생 비화와 실존 인물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객석에선 종종 '아~' 하는 탄성이 나왔다. 코리아 키튼즈가 미군 앞에서 공연하는 영상을 따라하는 장면에선 윤복희가 직접 녹음한 내래이션도 흘러 나온다.
'레전드' 여섯 그룹의 이야기를 제한된 러닝 타임 내에 모두 담으려다 보니 서사적 깊이 측면에선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느껴진다. 그 와중에 음악과 춤이 사회 저항의 동반자였다는 메시지까지 잠시 삽입이 됐는데, 안 그래도 부족한 러닝 타임을 걸그룹 서사에 더 할애하는 것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옛 시절 추억의 노래와 가수를 다시 만나고 싶은 중장년층 관객과 부모님과 함께 관람하기 좋은 '효도용' 뮤지컬을 찾는 젊은 관객이라면 이 작품에 만족할 것. 극장을 나와 어느새 이 구절을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뱃머리도 신이 나서 트위스트/아름다운 울릉도…"(울릉도 트위스트, 이시스터즈)공연은 서울 연건동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11월 12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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