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들이 자유로운 이유? '바보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지

[arte]정기현의 탐나는 책
모리미 토미히코, 『유정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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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로움’의 감각을 균형으로부터 획득한다. 회사와 취미, 사랑과 꿈, 연민과 기댐들이 알맞은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져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곳에 머무르다가도 다른 곳에 흥미가 동하면 훌쩍 떠나고,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가뿐함. 이것이 곧 일상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감각인 것 같다.

하지만 주위에 “나 지금 굉장히 자유로워.”라고 단언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이 완벽한 균형을 달성해 내기엔 방해 요소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자유로움은 얼결에 완성된 젠가 퍼즐 같다. 다음 차례에 어떤 조각을 건드려도 반드시 쓰러지게 되어 있는……. 나의 자유로움은 대개 그렇게 바닥에 조각조각 흩뿌려진 채로 수백 수천 번째 다음을 도모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 좀만 기다려. 아니 다음 달에는 진짜. 아니 내년에, 다 됐고 영면 이후에는 진짜 진짜 진짜 자유로워질 수 있어!
사진 = 알라딘
짬을 내어 찾아간 동해바다에서 한 친구가 『유정천 가족』을 추천해 주었다. 어쩌다 시작된 너구리에 대한 대화가 생각보다 길게 이어져 그 끝에 권해 준 책인데, 이 책에서 나는 자유로움을 향한 단서를 하나 발견했다.

『유정천 가족』은 너구리, 인간, 텐구(일본 전설의 동물)가 서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공생하는 세계를 배경으로, 주인공(너구리) ‘야사부로’가 가족에게 일어난 의문의 죽음을 파헤쳐 나가는 소설이다. 인간들에게 붙잡혀 ‘너구리 냄비 요리’가 된 아버지는 너구리계의 수장 격이었던 존재로, 세력 다툼과 정치적 음모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네 마리의 아들 너구리가 점차 그 음모를 밝혀 나가는데,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사건을 좇으면서도 분위기는 시종 밝고 엉뚱하다. 범인을 추적하는 길 위에서도 자꾸만 옆으로 새고, 작전이 실패로 끝나도 그저 어쩔 수 없다며 툭툭 털어 버리는 가벼운 분위기.
슬픔과 복수심이 짓누르는 와중에도 이들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다 무적의 핑계, ‘바보의 피’ 덕분이다.

“우리 몸속에 매우 진한 ‘바보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한 번도 창피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이 태평성대를 살아가며 맛보는 기쁨이나 슬픔도 모두 이 바보의 피가 가져다주는 것이다. (…) 시모가모 가문의 너구리들은 대대로 그 몸속에 흐르는 바보의 피가 시키는 대로 때로는 인간을 호리고 때로는 텐구를 함정에 빠트리며, 때로는 펄펄 끓는 쇠냄비에 빠지기도 했다. 이것은 창피해할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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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피로 인해 라이벌 너구리에게 깜빡 속고, 바보의 피로 인해 텐구의 속 보이는 덫에도 걸려들며, 바보의 피로 인해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규율에 재물로 희생되지만, 역시 바보의 피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 그 모든 고난이 금세 가뿐해진다. 바보의 피는 자기 합리화가 아닌, 말 그대로 피에 흐르는 본성으로, 과연 모든 일에 적용되는 무적의 핑계라 할 만하다.

자유로움을 향한 너구리들만의 비법, ‘바보의 피’를 포착하고 나니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바보의 피’라는 게 과연 너구리 세계가 아닌 인간계에서도 통하는 비법일까? 문득 아빠가 내가 어릴 때부터 좌우명처럼 입에 달고 살던 말이 떠오른다. “기현아, 세상은 원래 조금씩 손해 보며 사는 거야.” 아빠는 인간이면서 어떻게 너구리 특유의 ‘바보의 피’를 체화할 수 있었을까.

『유정천 가족』의 너구리들조차 “이래서 인간은 당해낼 수가 없어. 텐구보다 훨씬 질이 안 좋아요.”라고 말하는 게 인간인데, 아빠의 말대로라면 인간사에서도 ‘바보의 피’ 비법이 통한다는 것?
너구리와 아빠를 믿는 마음으로 나도 한번 일단 따라 해 보기로 한다. 오늘은 금요일. 이번 한 주도 우당탕탕 가득이었지만 어쩔 수 있나, 바보의 피 때문인걸. 다 쓰러진 젠가를 다시 쌓으면서 헤헤 이게 다 바보의 피 때문이다, 바보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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