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경제전쟁, 룰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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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윤 국제부장최근 일부 경제학자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나 반도체지원법을 평가할 때 ‘도대체 미국에 무슨 철학적·지적 급변 사태가 발생했나’라는 의문을 종종 제기한다. 왜 그럴까. 시간을 2007년으로 되돌려 보자. 그해 3월 미국 상무부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지급된 인쇄용지 제조업체 두 곳에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은 중국 같은 ‘비시장지위 국가’의 보조금 지급은 눈감아 줬지만, 2007년부터 달라졌다. 미국 정부는 매년 ‘연례 보조금 보고서’까지 발표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외국 정부의 불공정 보조금 지급 관행 혁파를 위해 노력했다.
보조금 전쟁 불 지핀 미국
이번엔 1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 보자. 작년 8월 미국 상무부는 IRA와 반도체지원법을 발표했다. 청정에너지와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총 4500억달러(약 600조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독일 프랑스 등도 기업들의 미국행을 막기 위해 보조금 지급 계획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자유무역의 ‘전도사’이자 ‘수호자’ 역할을 자처했던 미국이 글로벌 보조금 전쟁의 불을 지핀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변화의 분기점은 2017년 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이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보호주의 조치를 쏟아냈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미국의 보호주의 정책을 워싱턴 정치의 이단아가 만들어낸 일탈 정도로 치부했다. 그런데 2021년 초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산발적으로 쏟아졌던 보호주의 정책을 보다 구체화·체계화했다. 이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4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한 연설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규제 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경제 아젠다’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설리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한 국제경제 질서로 인해 많은 미국 근로자와 지역사회가 뒤처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전 세계를 위해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 출발점은 현대적인 산업 전략으로 미국 내에 새로운 산업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조금 정책과 보호주의 무역정책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연설이었다.1980년대 이후 미국 경제정책의 사상적 뿌리는 신자유주의였다. 그리고 그런 미국식 자본주의를 세계에 확산하기 위해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이름 붙여진 정책 패키지를 채택했다. 규제 완화, 무역 자유화, 작은 정부, 민영화 등이 핵심 골자였다. 설리번의 연설은 미국이 이런 경제정책 아젠다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의 정책 기조 선회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이 세계화라는 ‘평평한 운동장’에서 자유 경쟁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이런 시대에 국가의 역할은 규제 완화에만 그쳐서는 곤란하다. 규제 완화는 기본이다. 보다 적극적인 산업정책과 냉철한 외교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