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의 대물림'이라는 낙인

김동욱 중소기업부장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근대의 걸작’. 일본의 관료 출신 경제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는 기업을 최상급 예술작품에 빗댔다.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근대적 공업 생산에 최적화해 탄생한 조직이 기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전근대 조직과 기업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일까. 사카이야가 주목한 것은 기업의 철저한 ‘비속인성(非屬人性)’이었다.

사람에게 얽매이지 않는 법인

기업은 물자를 효율적으로 이용해 제품을 최대한 많이 생산하기 위해 탄생했다. 조직의 핵심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과 돈이었다. 그 자본을 중심으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인 유사인격 ‘법인(法人)’이 성립했다.기업은 ‘자본이 먼저다’라는 삭막해 보이는 특성을 발판으로 큰 도약을 이뤘다. 법인은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는 도저히 모을 수 없는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고 대형 설비를 돌렸다.

무엇보다 개인의 굴레를 벗어남으로써 법인은 ‘영생’을 얻었다. 근대 기업에선 경영자가 바뀌어도 회사는 변함없이 존속할 수 있었다. 경영자 개인의 노화나 죽음은 기업 경영과 별개의 문제가 됐다. 토머스 에디슨이나 잭 웰치 없이도 제너럴일렉트릭(GE)은 100년을 훌쩍 넘겨 유지됐다. 스티브 잡스 사후에도 애플은 굳건하다. 헨리 포드와 포드의 관계처럼,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가 동일시되지 않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기업은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은 변하지 않는, 영속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법인과 개인의 분리라는 기업의 근대적 속성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곳곳에서 자주 접한다. 기업의 경영 승계와 관련해 “부의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기업의 상속을 백안시하는 것은 기업과 경영인 개인이 뒤섞인 불가분의 상태를 전제로 삼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업을 가산(家産)으로만 바라보는 전근대적 사고에서 기업은 창업자, 최고경영자(CEO)가 사망하면 모든 것이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세계에선 자본과 경험의 축적은 사라지고, 한 세대가 끝날 때마다 ‘시시포스의 작업’만 반복될 뿐이다.

전근대적 시각에 기반한 법과 제도는 사방에서 근대적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물려받은 모든 재산은 부당한 것’이라는 주장은 ‘약탈적’이라고 평가받는 상속세로 구체화했다. 개인과 기업을 분리해 바라본다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자식이 계속 경영하는 동안은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하는 게 순리겠지만 이런 주장은 발 디딜 틈도 없다.

'가난의 대물림' 택할 건가

대신 상속 자산이 30억원을 초과하면 50%, 주식을 상속받으면 최대 60%의 높은 상속세율이 획일적으로 적용돼 기업을 물려받은 이들을 옥좼다. 평균 매출 연 5000억원이 넘는, 그럴듯한 법인은 상속세 및 증여세 납부를 유예할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 대상에서 아예 빠진다.소위 분배 정의·기회의 평등을 앞세운 고율의 상속세는 기업의 성장 억제, 축적의 붕괴라는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시대착오적 편견이 만연한 사회 풍토 속에서 근대적인 기업관은 뿌리내릴 틈이 없다.

지금이라도 개인과 법인을 분리해 비약적인 발전을 일군 근대 자본주의의 선택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타파할 것은 ‘가난의 대물림’이지 ‘부의 대물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