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양자·AI까지…美, 中 첨단산업 돈줄 옥죈다

투자 제한으로 기술 유출 차단
안보위협 순위 따라 차등 규제

中 "무역질서 파괴" 보복 전망
韓기업도 동참 압박 가능성
미국이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첨단기술과 관련된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한다. 대(對)중국 투자로 미국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조치다.

○기술 유출 막으려 돈줄 차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미국 자본의 중국 반도체·AI·양자컴퓨팅 기술 투자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 통제를 한 데 이어 돈줄까지 막고 나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미국의 이번 조치는 선별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면 통제에 가까웠던 반도체 수출 규제 때와는 온도 차가 난다는 얘기다. 미국은 반도체, 양자컴퓨팅, AI 등 3대 첨단기술 투자 규제에 초점을 두되 차등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기술별로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투자를 금지하고 그렇지 않은 분야는 신고 대상으로 뒀다.

반도체에선 첨단 반도체 설계와 제조, 패키징 기술은 투자 금지 대상으로 규정했다. 첨단이 아닌 반도체는 신고 대상으로 정했다. 첨단 반도체 기준은 재무부가 업계 의견을 듣고 정할 방침이다. 업계에선 지난해 10월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서 정한 첨단 반도체와 구형 반도체 기준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양자 분야에선 양자컴퓨터 및 특정 양자센서와 관련된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했다. 중국 정부 및 군대와 무관한 양자센서 기술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미국은 이번 투자 제한을 받는 주체를 미국인과 미국 법인으로 한정했다. 투자 규제 대상이 되는 국가는 중국, 홍콩, 마카오로 정했다. 규제 대상 기업 범위는 첨단기술 관련 매출과 투자액, 순익 등이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으로 국한했다. 또 기존 투자는 제외하고 이번 조치가 시행되는 시점 이후의 신규 투자만 적용 대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조치는 중국 스타트업과 일부 대기업에만 적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재무부는 첨단 반도체 등과 관련한 구체적 기준을 정하기 위해 향후 45일간 관계부처와 산업계 의견을 청취한 뒤 세부 규정 초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후 다시 이해관계 의견을 수렴해 이르면 내년에 세부 규정 최종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中 스타트업과 일부 대기업에 국한”

미국이 중국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를 금지한 것은 미국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자본 수출국이기 때문에 우리 돈이 필요하지 않다”며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노하우이며 이런 노하우는 특정 유형의 투자를 통해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국제 경제·무역 질서를 파괴하고 글로벌 생산·공급망 안전을 심각하게 교란했다”고 비난했다. 미국이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제외한 뒤 중국이 갈륨과 마그네슘 수출 통제를 시작한 것처럼 중국의 대미 보복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보도참고자료에서 “미국의 해외투자 제한 제도는 앞으로 이뤄질 투자에 적용되고 적용 범위가 미국인 또는 미국 법인으로 한정돼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미국이 추후 동맹국들에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이번 조치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의 결정”이라며 “이번 조치에 동맹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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