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던 캠코더 다시 꺼냈어요"…1020 푹 빠진 이유 [이슈+]

'Y2K 트렌드' 젊은 세대 겨냥 성공
캠코더로 뉴진스 ''디토' 감성' 연출 인기
"과거는 추억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재미"
뉴진스의 '디토(Ditto)' 뮤직비디오 속 캠코더로 촬영하는 장면. /사진='디토' 뮤직비디오 영상 캡처
"아빠가 어릴 적 모습을 찍어주시던 캠코더를 창고 속에서 다시 꺼냈어요"

최근 유행하는 '세기말 감성'에 푹 빠졌다는 직장인 이모 씨(26)는 "얼마 전부터 캠코더로 일상을 기록하는 취미가 생겼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씨는 "요즘 옛날 감성으로 촬영된 영상이 유행하길래 한번 따라서 찍어보고 싶었다"며 "스마트폰의 고화질 사진만 보다가 캠코더 특유의 노이즈 낀 듯한 화면을 보니 그 시절 감성이 새롭게 다가와서 좋다"고 했다.10~20대 여성들 사이에서 'Y2K(세기말) 감성'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가운데, 1990~2000년대 초반 스타일과 아이템 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6일 키워드분석사이트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29일부터 전날까지 'Y2K 감성' 언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78.57% 급증했다.

복고(레트로)가 과거를 그리워하며 과거에 유행했던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등 그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면, 'Y2K 감성'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당시 특유의 분위기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본래 Y2K는 Y는 연도(year), K는 1000을 뜻하는 킬로(kilo)를 따서,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사용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2000년을 1900년으로 인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오류를 의미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개념이 확장돼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패션, 문화, 스타일 등 감성을 재현한 것들을 일컫는다.
유튜브에 올라온 '디토' 감성 관련 유튜버들의 숏폼 콘텐츠.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Y2K 감성을 반영한 패션으로는 복고풍에 화려한 장식이나 프린팅이 있는 티셔츠부터 배꼽까지 올라오는 청바지, 글씨가 크게 적힌 야구모자, 크롭티(배꼽티) 등이 있다. 여기에 얼마전까지 "한물갔다"는 평을 받았던 유선 이어폰과 헤드셋, 캠코더 등도 인기 아이템이 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Y2K 감성이 자유로움과 신선함을 찾는 데 재미를 느끼는 Z세대의 심리를 자극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이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임에도, 과거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것. 개성을 중시하고 자신을 과감히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었던 당시의 모습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하나의 '신선한 문화'로 자리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특히 10~20대 사이에서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스타일은 Y2K 감성을 제대로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Y2K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올해 초 공개된 뉴진스의 '디토(Ditto)'와 뮤직비디오(MV)는 멤버들이 교복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캠코더로 촬영한 모습이 담겨 화제를 모았다. 해당 영상은 공개된 이후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게 됐다. 6일 기준 조회수는 3360만회를 넘겼다.

뉴진스의 '디토' 뮤직비디오 속 캠코더로 촬영한 기법이 유튜브 내에서 인기 있는 Y2K 스타일로 자리 잡으며 이른바 ''디토' 감성'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Z세대들이 '디토' 감성으로 촬영했다며 올린 사진과 영상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디토' 감성을 재현할 수 있는 카메라에 대한 이들 세대의 관심 자체도 늘어났다.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지난 5월 캠코더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275배 늘어났으며, 레트로 카메라와 폴라로이드도 각각 20배(1970%), 5.5배(460%) 증가했다.
SNS에서 인기몰이 하고 있는 '디토' 감성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 화면 캡처
업계 관계자들은 스마트폰 사진에 비해 화질이 낮고 보정 기능이 전무할지라도, 레트로 카메라를 통해 과거 감성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디토' 감성의 인기를 분석했다. 지난달 한 일반인 유튜버가 올린 '2002년 상문고 'ditto' 버전'이라는 이름의 영상의 경우, 당시 학생들이 촬영한 캠코더 영상을 바탕으로 '디토' 뮤직비디오를 리메이크해 최근 조회수 59만회를 기록했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이런 게 역사이고 낭만이고 추억이다", "저 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아련해지면서 그립다", 난 04년생인데도 갑자기 아련해진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외에도 5개월 전 올라온 방송인 유재석의 과거 프로그램 출연 당시 모습을 담아낸 '디토' 감성의 영상은 유튜브 내에서 조회수 195만회를 달성하며 눈길을 끌었다.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디토' 감성을 포함한 Y2K 스타일의 인기에 대해 "Y2K 스타일은 촌스럽지만 재미있고 투박한 감성으로 10~20대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세대에게 과거의 감성은 추억으로 승부 본다기보다 새롭게 와닿는 요소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에게 Y2K 스타일을 새롭게 발굴해내는 것은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놀이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젊은 세대들은 SNS나 인터넷 자체를 많이 하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콘텐츠나 놀거리가 필요한데, Y2K의 여러 요소가 사람들이 몰입하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본다"며 "앞으로 더 감성을 자극할만한 Y2K 스타일이 생겨나면 세기말 감성의 인기는 충분히 오래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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