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방중 앞두고 '핵심광물 전쟁' 선포한 중국…속셈은?

공산당 관영매체 "광물 수출 통제는 상호 대응"
한국 반도체 업계 상황 점검 나서
차세대 전력반도체 차질 우려
중국, 미국에 고율관세·반도체 통제 철폐 '협상 카드' 활용 전망
중국이 자원 무기화 본격화하면 국제사회 고립 가능성도 확대 '부담'
중국이 첨단기술과 방위산업 등에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통제하고 나섰다. 미국을 상대로 '핵심 광물 전쟁'을 선포했다는 평가다. 미·중 전략 경쟁 전선이 넓어지는 가운데 한국 등 핵심 자원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상호 대응' 명확히 한 중국

중국 공산당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3일 밤 상무부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조치 발표 직후 전문가들을 인용하는 형식의 해설 기사를 내보냈다. 이 매체는 "수출 통제는 주요 금속의 최종 사용자와 용도를 명확히 해 국가 안보와 이익 관련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이자 "미국의 중국 첨단기술 접근 제한에 대한 상호 대응"이라고 보도했다. 익명의 전문가는 "군사적 용도가 포함되거나 중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해당 광물이 쓰일 경우 정부가 수출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천핑잉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이 다양한 희귀 금속을 세계에 공급하는데, 서방은 그 금속으로 제조한 반도체로 중국의 목을 조이고 있다"며 "수출 통제는 상호적 대응책"이라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또 "중국이 갈륨 금속과 1차 가공품을 미국에 수출하고, 다시 미국으로부터 심층적으로 가공된 제품(산화갈륨 등)을 수입하는 난처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무부의 수출 통제는 미국 등 특정 국가를 적시하지 않았으나, 관영매체가 조치의 대상이 미국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수출통제법 등 관련 조항에 따라 8월1일부터 갈륨 및 게르마늄 관련 품목 수출을 통제한다고 3일 발표했다. 수출업자는 수입자 및 최종 사용자, 용도에 대해 상무부에 설명해야 하며,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수출할 수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8월 고열·고전압 환경에 쓰이는 반도체 소재인 산화갈륨을 정부 허가 없이는 수출할 수 없는 통제 품목 리스트에 올렸다.

한국도 차세대 반도체 차질 가능성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은 중국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상황 점검에 나섰다. 갈륨과 마그네슘은 메모리 반도체의 원료가 아니라는 점에서 주력 사업에는 일단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다른 원자재의 추가 수출 통제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갈륨을 가공한 질화갈륨을 활용한 차세대 전력반도체를 개발 중이라는 점에서 신사업에는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질화갈륨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서버나 전기차에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미국도 전략 물자로 지정한 상태"라며 "미국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실화한 자원 전쟁

중국은 미국이 화웨이 등 자국 기업을 잇달아 '블랙리스트'에 올리던 2020년 말 대응책으로 수출통제법을 제정했다. 이후 중국이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희토류 등 희귀 광물을 무역 전쟁에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번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는 이런 관측을 현실화한 것이다. 중국은 채굴·제련 과정에서 환경 오염 우려가 큰 희귀 광물 생산량을 늘리면서 전 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구축해 왔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2021년 기준 중국이 95%, 67%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의 이번 수출 통제는 주된 타깃인 미국 외에도 한국과 일본, 유럽 주요국에도 상당한 여파를 미칠 전망이다. 여기에 중국이 희토류까지 수출을 통제하면 각국의 첨단·방위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폴 트리올로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이런 자원을 무기화하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 EU, 아시아의 계산이 크게 복잡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의 자원 전쟁에 대비해 미국과 호주 등이 희토류 생산량을 늘리면서 중국의 희토류 채굴량 점유율은 2017년 79%에서 2021년 60%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 희토류 제련(가공) 제품은 여전히 중국이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게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분석이다.

중국 '협상용' 분석…'역풍' 가능성도

중국이 희토류에 비해 여파가 적은 갈륨과 게르마늄을 먼저 통제 리스트에 올렸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협상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6~9일 방중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런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트리올로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관련 수출 통제를 철회하도록 하는 협상 카드로 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부과된 고율관세를 철폐하는 것도 중국의 주요 의제다.

신화통신, 중국중앙TV(CCTV) 등 권위를 내세우는 관영매체들이 상무부 발표를 그대로 옮기는 수준의 보도만 하고, 선동적 기사를 자주 쓰는 극우 성향의 환구시보가 전면에 나서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부분에서도 중국의 이번 통제가 '탐색전'일 것이란 해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중 공세를 완화하진 않을 것이며, 이번 중국의 수출 통제가 결국 미·중 자원 전쟁을 심화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단기적으로 중국 이외의 다른 공급처에서 갈륨·게르마늄 확보에 나서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생산을 포함해 안정적 보급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광물 생산을 줄였던 다른 국가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추가 생산에 나서면서 중장기적으로 생산·공급이 안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으로선 희귀 광물·금속의 생산·공급을 맘대로 조절하는 '경제적 강압' 국가로 부각될 수 있음을 우려해야 할 처지가 됐다. 국제사회 여론이 '반(反)중국'으로 돌아설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에 비해 온건한 입장이었던 유럽 국가들까지 다시 중국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주요 7개국(G7)은 지난 5월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당시 중국은 "미국이야말로 경제·무역을 정치화하고 무기화한다"고 대응했다. 중국은 이번 조치가 '대응적'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중국도 경제·무역을 무기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황정수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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