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이란 미술?

[arte] 정준모의 아트 노스탤지어 - 한국의 실험미술 (1)
2023 한국의 실험미술 도록 표지

‘실험’이란 미술?

이른 여름 더위가 지구온난화를 실감하게 하는 요즘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3년 5월 26일~7월 16일) 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 미술의 세계 미술사 속 영토 확장을 위해 1998년부터 추진해 왔던 한국현대미술전이 잠시 숨을 골라 다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한국현대미술 국제전시다. 특히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강수정과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의 큐레이터 안휘경이 공동으로 기획해서 마련한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에 이어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2023년 9월 1일~2024년 1월 7일까지)에서 <젊은이들: 한국의 실험미술, 1960~1970년대>(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란 제목으로 열린 후 LA 해머미술관(Hammer Museum, 2024년 2월 8일~5월 11일)으로 순회 전시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현대미술의 한 부분 즉 1960년대~1970년대의 한국 미술이 미국의 메이저 미술관에서 열린다는 것은 한국 미술의 위상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역량이 이제는 녹록하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반증인 동시에 미술뿐만 아니라 경제 강국 대한민국의 역량이 문화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대중예술에서 한국의 문화적 수준과 힘은 대단한 수준에 이르러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문화로 자리잡고 세계적인 연주자를 배출하는 K-클래식과 함께 대중예술의 뒷심이 되는 K-미술의 면모를 새롭게 할 기회라는 점에서 반갑고 새롭다.
2001년 한국현대미술-전환과 역동의 시대 전시 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세상을 이미 떠났거나 팔순을 넘긴 노 청년 작가들 29명의 작품 99점과 31건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전시의 모본은 22년 전인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최된 <한국현대미술의 전개, 전환과 역동의 시대, 1960년대 중반~1970년대 중반>이다. 이 전시는 당시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전위적인 미술가 50명의 작품 170여 점을 전시했다. 특히 당시 작품의 성격상 소실되거나 사라진 작품의 경우 충실하게 재현해 미술사를 복원하려는 것이 목적인 전시였다. 당시 복원된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 근·현대 미술을 통사적으로 정비하고 체계화하고자 1997년부터 6간 장기 기획전을 마련했다. 한국근대미술사를 장르별로 집대성한 <근대를 보는 눈>시리즈와 이후 <한국현대미술의 전개>를 개최했다. 이 전시는 현대미술의 전개 시리즈의 2번째 전시였다. 당시 이들의 전위적인 작품은 세계의 흐름을 반영하면서 세계사적 흐름에 따르는 한편 우리 나름의 자생적인 논리와 방법론을 보여주었다.


변화, 동서와 좌우 대립의 시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2강 체제가 되었다. 이는 식민지를 잃은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잃은 것을 말한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인 미국 또는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편을 선택해야 하는 시대였다. 냉전(Cold War)의 시대는 군비경쟁은 물론 달에 누가 먼저 도착하나를 두고 경쟁할 만큼 치열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지구를 확실하게 반으로 나누었다. 이후 1950년대 중반부터 싹 튼 중·소분쟁이 1960년대 중반, 절정에 이르면서 제2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소련에 독자 노선을 선언하며 비동맹운동에 나서고 1969년부터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협상이 1979년 체결되고 미국과 소련의 테탕트(détente)로 제한적인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유럽통합논의가 시작되고, 제3 세계가 등장하며,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의 등장으로 양극화된 세계질서는 다극 체체로 전환된다.

하지만 6~70년대는 분열의 시대 또는 내분의 시기이기도 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권력을 이은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이후 변혁의 시대를 맞으면서 해빙기를 맞았다. 그러나 흐루쇼프의 농업정책 실패와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유화적 대처로 실각하고 브레즈네프가 뒤를 이었지만, 체제를 현상 유지하는 선에 머물렀다.
2001년 발간된 한국현대미술-전환과 역동의 시대 도록표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도 이 시절 체제에 대한 도전을 쉼 없이 받았다. 특히 경제가 회복국면에 들어서자 욕망이 분출하면서 <베트남 파병 반대 운동>과 프랑스의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는” ‘68혁명’으로 새로운 좌파(the new left)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1960년대 이후 등장한 ‘문화적 좌파(the cultural left)’와 연합해 ‘보수·우파’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는 ‘진보·좌파’ 연합을 형성해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국가 미국과 서유럽의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이렇듯 1960년대는 급진주의자들에 의한 저항과 혁명의 시기로 급진주의 운동은 흑인의 민권, 민족주의 운동으로 나타났고, 페미니즘과 여성 해방과 동성애자 해방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좌파’로 알려진 백인 청년들이 있었다.

이들은 불만을 신마르크스주의의 ‘소외’의 개념을 빌어 설명하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존의 미국적 체제, 즉 자유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것이라 생각해 좌우 갈등이 격화했다. 이들은 점차 과격해져서 지기 시작해 서독의 극좌파 무장단체 적군파(RAF: Rode Armee Fraktion), 이탈리아의 극좌, 공산주의 계열 테러 단체인 붉은 여단(Brigate Rosse), 일본의 적군파 등으로 번져 세계의 젊은이들을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들끓게 했고 종국에는 국제적인 테러 조직으로 발전했다.

문화의 일상화, 대중화

1960년대 반항과 자유를 외치던 젊은이들은 “바깥과 행동을 지향하는 정치적인 쪽”과 “내면과 감각을 지향하는 히피적인 쪽”으로 나눈다. 신좌파 또는 반체제론자라는 이름의 전자는 사회적 불평등이나 베트남 전쟁 반대와 같은 정치적 투쟁에 몰두하면서 모든 형태의 권위에 맞서 궐기하는 시위를 행동 수단으로 삼았다. 반면 반문화(counter-culture) 또는 대항문화(Counter culture) 운동의 하나로 시작된 히피(Hippie, Hippy)는 비폭력 자연주의를 표방하며 사회에 반항은 하지만, 그들은 정치적 문제보다 주로 자신들이 구상하는 중산층의 삶을 구현할 대안적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하지만 이들 중 좌파 반체제에 속했던 이들은 혁명을 세상을 외면하고 다소 염세주의적인 경향으로 나타났다. 물론 둘 다 사회의 지배적 문화에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세를 공통으로 지닌 대항문화적 성격을 띠었지만, 미국의 민권운동, 반전운동, 흑인해방운동, 히피, 동성애와 여성해방운동, 환경보호 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2차대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주축이 된 소위 ‘꽃 운동(Flower Movement)’에 동참하는 히피족은 반전, 사랑, 평화를 외쳤지만, 적극적인 의미의 사회참여가 아니라 도피적이자 이상향만을 찾는 소극적인 집단이었다. 이들은 기성의 사회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에의 귀의 등을 강조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면서 평화주의를 주장했던 반체제, 자연을 찬미하며 평화와 자유, 사랑을 강조했다.

혁명을 위해 테러리스트를 자처했던 이들과 달리 물질문명을 거부하면서 장발에 맨발을 즐기는 동양적인 무소유의 삶을 원했고 LSD와 마리화나 등 마약을 즐기며 느긋하고, 자유롭게 자연 속 일상을 즐겼다. 특히 포크록을 시작으로 강렬한 비트의 환각적인 록 음악인 애시드락(Acid rock)과 사이키델릭 락(Psychedelic Rock)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반문화 혁명은 19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들은 세상을 풍자하는 음악을 탐닉하며 삶의 목적을 문화와 예술에 두고 특히 개방적인 성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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