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모은 간절한 이들…고흐의 '터닝 포인트' 된 기도하는 사람들

[arte] 김동훈의 고흐로 읽는 심리수업
반 고흐, 「기도하는 남자」(1883)
「기도하는 남자(Man Praying)」는 1883년 빈센트 반 고흐가 헤이그에서 그린 작품이다.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조로 인물의 머리와 얼굴이 강조되고 있다. 작품 속 인물은 기도하면서 마치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다짐하는 듯하다.
예술적 표현과 함께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어 다양한 의미로 읽힐 수 있지만, 필자는 외로움과의 투쟁으로 읽으려 한다.

외로움은 사회적 연결의 결핍에서 비롯된 슬픈 감정이다. 외로움이 계속되면 소외감, 불안감, 우울감, 절망감 등을 유발한다. 고흐는 평생을 혼자 보냈지만, 기도하는 모습의 초상화를 그리고 시골 드렌터로 이주한 이후로는 더 이상 외롭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외로움을 대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다. 외로움을 회피함과 동시에 그림 판매를 위해서 인간관계를 애써 유지하려던 자세를 버리게 된 것이다.

서러움이 초래하는 고독감


고흐는 기도와 관련된 작품을 1882년과 1883년에 연이어 다섯 편이나 그렸다. 「기도하는 남자」 외에도 「식사기도(Prayer Before the Meal)」, 「기도하는 여인(Woman Praying)」, 「무릎 꿇은 두 여인(Two Women Kneeling)」, 「손을 모은 여인(Woman with Folded Hands, Half-Length)」을 그린 직후 각오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당분간 도시를 멀리 떠나 홀로 있고 싶다.”
반 고흐, 「식사 기도」(1882)
반 고흐, 「손을 모은 여인」(1883)
대도시 헤이그를 떠나 네덜란드 북동부에 있는 드렌터로 향했다. 동생 테오와의 재정 갈등부터 시작해서 생활비를 받아 쓰는 죄책감까지, 그리고 가끔씩 치밀어오르는 원인 모를 분노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그를 오지로 떠밀었다. 동거녀 시엔과 그녀의 어린 딸, 그리고 갓난아기와 헤어지고자 마음을 다잡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하지만 그가 탄 기차가 헤이그 역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 결정이 옳았는지 의심하고 후회하며 괴로워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기나 한 듯 이번 결정에도 고통이 따랐다. 그동안 정을 주었던 사람들이 싫어 멀리 왔건만 정작 자신만 쏙 빼놓은 채 그들끼리 즐거워한다는 생각에 서러움이 복받쳤다. 심리학에서는 이 감정을 고독감, 즉 외로움이라 한다. 고흐는 쓸쓸한 시골에서 딱딱한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눈시울을 적셨다.

급기야 이미 실연의 상처를 크게 입은 데다가 외로움, 분노, 원망, 죄책감 등 감정이 복합적으로 쌓이면서 고흐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883년 9월 말, 처음 기록된 고흐의 병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정신적 한계에 직면하여 사소한 일에도 극도의 흥분과 정신적 폭풍에 휘말렸다고 한다.그 상태에서 고흐는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흐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을 추슬렀다. “나는 지금 꿈속에서…… 공중누각에서 사는 게 아니야.” 바로 그 순간 드렌터의 광부들이 눈에 띄었다. 고흐의 기도 관련 그림 속 인물들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드렌터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외로움과 투쟁하는 가난한 사람들


고흐가 드렌터라는 곳을 본 순간, 그는 자신이 도피처에 온 것 같았다. 이런 불모지는 도주자들이 모이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토탄들이 가득한 이곳은 석탄과 같은 검은색으로 덮여 있었다. 이끼가 토탄 위를 덮고 있어서 검정 팔레트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무들은 앙상하게 자라 있었는데 길을 따라 심어진 듯 보였다. 마을 곳곳에는 토탄을 운송하기 위한 도랑이 거미줄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도랑 안은 토탄 찌꺼기로 가득해서 마치 검은 늪 같았다. 하지만 이런 무채색 마을에 그곳 사람들의 마음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청결하지 못한 축사 같은 곳에서 최저 임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추운 겨울이 되면 땔 나무도 없는 고지대의 황량한 곳이었지만, 일자리를 찾던 사람들은 토탄을 채취할 인부를 고용한다는 소식에 들뜬 맘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그해 겨울,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추위와 배고픔뿐이었다. 토탄들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있었고 동상에 걸린 손발을 어루만지며 일거리도 땔감도 없이 또다시 새해를 기대하며 혹독한 겨울을 견뎌야만 했다.드렌터는 열악한 노동 조건과 중앙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경제 침체와 먹거리 부족이 지속되고 있었다. 흡사 오늘날의 악덕 플랫폼과 같은 인력 브로커들의 파렴치가 극에 달하면서 인부들은 일한 만큼의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상상도 못할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결국 이곳 사람들은 돈을 모으기는커녕 빚쟁이 신세가 되었고 인간 이하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광부들은 그 척박한 땅에서도 부자들이나 중간 브로커에게 아부하지도 굴하지도 않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울 뿐이었다. 고흐는 그들의 강인함과 당당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감자 캐는 사람, 토탄 및 석탄, 모래 운반업자 등 고된 일을 하는 이들의 흐트러지지 않고 매사에 진정 어린 당당함과 솔직함이 그의 작품에 드러난다. 이때의 그림 작업이 고흐의 예술 작품을 더욱 완성도 높게 만들었다.
반 고흐, 「기도하는 여인」(1883)

외로움을 이기는 자기체념


고흐가 얼마 전 그렸던 기도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종교성 부분은 논외로 하고, 기도란 자신과의 대화를 솔직하고 진지하게 이어가는 것이다. 그 진실한 독백이 몸에 배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고흐는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기도라는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해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묵묵히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면서 위로와 희망을 느꼈다.

이윽고 외로움과 내적 투쟁을 하기로 결심하고 드렌터로 떠났다. 고흐가 드렌터에서 주로 그린 초상화는 심리적으로 영향력이 가장 큰 작품들이다. 단색을 사용하여 수묵화처럼 담백하게 그곳 주민의 외로움과 솔직함, 진실됨을 표현하고 있다. 그 작업과 함께 고흐는 외로움에서 비롯된 심리적 혼란을 하나씩 정리할 수 있었다. 즉 외로움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고흐의 이런 변신은 자신보다 40년 먼저 태어나 ‘덴마크(코펜하겐)의 소크라테스’라는 별명으로 살았던 쇠렌 키르케고르의 ‘자기체념’과 맞닿아 있다. 즉 자신의 욕구, 목표, 가치관 등을 일시적으로 유보하거나 부정하는 행위가 자기체념이다. 이제까지 고흐는 황홀한 사랑, 귀여운 아이들, 유명한 화가, 풍요로운 인생 등을 꿈꾸었지만 실상은 그 욕구들로부터 내팽개쳐진 듯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그 운명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정면 승부를 하기로 했다.

미술계의 화상이 됐든 악랄한 중개상이 됐든 간에 이제 고흐는 그 누군가의 갑질로 자신의 운명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기보다는 고독이라는 그 힘겨운 과정을 선택했다. 고흐에게서 볼 수 있듯이 자기체념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살펴보고, 그에 따라 결단하는 능동적인 태도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태도를 갖추게 되면 무한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을 회복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반 고흐, 「무릎 꿇은 두 여인」(1883)

외로움으로의 터닝포인트


달콤했던 사랑이 깨지고, 기대했던 희망도 어긋나고, 이루려던 사명도 사라지고 난 뒤에는, 모든 것이 무너진 듯 절망감이 찾아온다.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에서 오로지 혼자 표류하는 듯한 고독감과 대면한다. 고흐도 그랬다. 이때 고흐는 자발적인 자기체념으로 외로움과 맞상대 했다.

기도 관련 초상화를 그릴 때만 해도 머리로만 알았던 그 진실을 고흐는 인생의 막장에서 깨달았다. 드렌터의 토탄 채굴 현장에서 고요하고 평화롭게 기도하며 애쓰는 인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고흐는 작업 과정에서 감정을 조절하고 집중력을 향상시키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누구의 얼굴에서 이런 진실을 볼 수 있을까? 어차피 생색내고 속이며 위선적인 삶으로 파렴치하게 다른 이들의 품삯을 가로채는 사람만 아니라면 누구에겐들 배울 것이 없을까? 이제 외로움에 당당히 대면한 사람을 발견한다면, 아마도 고흐와 같이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나도 우울한 때가 있어, 그리고 사라져 버릴까도 생각했지, 하지만 말이야, 그런 감정이 들 때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사라져 버리는 것, 자살, 이런 것들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외로움 속에서도 고흐가 그랬듯, 이런 다짐을 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버틸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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