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밖으로 나온 배달봇…'로봇 택배원'도 등장할까 [긱스]

배달로봇, 법 개정으로 '쾌속 질주'

상반기 도로교통법 등 개정 통해
배달로봇, 실외도 오갈 수 있게 돼

리조트·편의점·식당서 실증사업 확대
와트, 엘리베이터 혼자 타고 택배 옮겨

생활물류법 개정 땐 화물배송도 가능
택배 노동자와 '일자리 갈등'은 과제
#. 스타트업 모빈의 배달로봇은 오는 9월 아일랜드 리솜 리조트에서 실증사업에 나선다. 모빈의 로봇은 독자 기술로 개발한 ‘물렁한 바퀴’로 계단 등 장애물을 오를 수 있는데, 경사로나 연석이 많은 리조트에서 수요가 늘었다. 최진 모빈 대표는 “연내 도미노피자 등 프렌차이즈와도 실증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서울 방배동 일대와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선 올해 10월까지 스타트업 뉴빌리티의 로봇 ‘뉴비’가 먹거리를 실어 나른다. 방배동 세븐일레븐 2개, 건국대 주변 14개 음식점이 대상이다. 이상민 뉴빌리티 대표는 “실외 로봇이 보행로를 오갈 법적 근거가 마련돼 도심지 배달이 가능해졌다”며 “딥러닝 기반의 객체 인식 고도화로 시장 선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배달로봇 시장이 하반기에 본격 태동할 전망이다. 그동안 갖가지 규제에 막혀 관련 시장이 주춤했지만 올 들어 도로교통법, 지능형로봇법 등 로봇이 실외를 오갈 법체계가 정비되면서 실증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업계에선 로봇의 배송 대행을 허용하는 방향의 생활물류서비스법 개정 여부가 배달로봇 ‘빅뱅’의 단초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배달로봇 기술 ‘준비 완료’

배달로봇이 실험 공간 밖으로 향하는 첫 조건은 단연 주행 능력이다. 특히 복잡한 도심지에서 자신과 목적지의 위치를 특정하고, 장애물을 회피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식당 내부만 오가는 서빙로봇이 빠르게 상용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스타트업들은 주행력 확보에 집중했고, 유의미한 결과를 이뤘다는 평가다. 현대자동차 사내 스타트업으로 분사한 모빈과 지난해 시리즈A 라운드에서 230억원을 모은 뉴빌리티 역시 장애물 극복에 사활을 걸었다. 생존한 경쟁사들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우아한형제들은 2018년부터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개발해 왔는데 광교호수공원과 일반 아파트 공동현관 등 각종 장소에서 실증을 거쳤다. 아마존웹서비스(AWS) 클라우드를 활용한 끊김 없는 네트워크 연결, 왕복 위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의 최적화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우아한형제들은 복잡도가 높은 강남 테헤란로에서 하반기 실외 배송을 추진한다.

언맨드솔루션은 위성항법장치(GPS)와 라이다(LiDAR), 카메라 센서 세 가지를 동시에 활용한다.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던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감속기를 통해 경사로를 오르는 기술도 개발했다.

벤처기업 로보티즈는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강동구 고덕센트럴아이파크에 실외 음료 배송로봇을 공급했다. 파생 서비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공동현관에서 집 앞까지 택배를 옮겨주는 스타트업 와트가 개발한 배달로봇은 엘리베이터 구조를 30분이면 모두 학습한다.스타트업 빅웨이브로보틱스는 로봇 플랫폼을 내놓으며 지난 4월 98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요청 업체에 최적의 로봇 제작 업체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해외선 이미 1000만㎞ 달렸다

배달로봇 시장이 성장 중인 것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시장조사 업체 럭스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까지 주문자 앞에 물건을 최종 배송하는 ‘라스트마일’ 배송 수는 2890억 개에 달할 전망으로, 이 중 20%를 로봇이 담당할 것으로 추산됐다. 추정 세계 시장 규모만 851조원인데, 이 중 61조원을 차지할 것이란 관측이다.

해외 기술 발전 속도는 빠르다. 영국에서 창업된 스타십테크놀로지스는 배달로봇으로만 전 세계 누적 이동 거리 1000만㎞를 돌파했고, 미국에선 오토노미, 뉴로, 포스트메이트 등이 저장 용량을 키우고 자율주행 수준을 사람 도움이 필요 없는 ‘레벨 4’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2020년부터 배달로봇 자율주행을 허가했다.국내에선 올 상반기 배달로봇의 법적 근거를 다지는 법안들이 차례로 통과됐다. 3월 배달로봇이 주행 목적으로 촬영한 보행자 얼굴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아니도록 조치했고, 4월에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해 보도를 이용할 수 없었던 로봇을 보행자 정의에 포함했다. 30㎏ 이상 동력 장치의 공원 출입을 금지하는 공원녹지법은 지난해 9월 정부 규제 개선과제에 포함돼 논의가 진행 중이다.

○낡은 규제, 특정 집단 반발 넘어야

생활물류서비스법 개정은 마지막 남은 과제다. 해당 법은 택배 서비스와 화물배송대행 서비스 운송 수단의 정의를 다루고 있는데, 현재는 화물자동차와 오토바이만 포함돼 있다. 국회에 발의된 다수 개정법안은 대부분 운송 수단에 드론과 로봇을 추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통합개정안이 4월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남은 과제가 만만찮다.

법안 통과를 주도한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법률에선 기초를 다지고 구체적 내용은 대통령령을 통해 해결할 예정이라 본회의 통과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화물 및 택배업계의 뚜렷했던 업역 구분이 사라질 수 있어 특정 집단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이 발의된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택배노조는 “무인 배송 수단 도입은 고용 감소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법안 통과 후 부처 간 주도권 다툼으로 실제 사업이 표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법안 공포와 시행 사이인 1년간 구체적 인허가 문제를 규정할 시기가 오면 다시 한번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 배달로봇 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하다 보면 담당 공무원이 자기 부처 규제 샌드박스를 거치지 않았다며 아쉬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지금도 국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부처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느낌인데 시행령이 만들어질 시기에 컨트롤타워가 없다면 혼선이 클 것”이라고 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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