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네 권의 책으로 아일랜드 대표 작가 된 클레어 키건 [이 아침의 소설가]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55)은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는 소와 양, 돼지를 키우는 농장을 운영하는 대가족의 막내였는데, 집에 있는 책이라곤 성경과 요리책 2권뿐이었다. 그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며 “책 없이 자라는 게 나쁜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키건은 열입곱 살에 집을 떠나 미국 뉴올리언스에 있는 로욜라대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아일랜드로 돌아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첫 단편집 <남극>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이후 20년 넘도록 그가 낸 책은 단 4권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섰다. 아일랜드 교과서에도 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한 작품의 길이가 길지도 않다. 대부분 단편이고, 길어야 중단편이다. 2021년 출간한 가장 최근작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114쪽이다.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는데, 역대 부커상 후보 중 가장 짧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미혼모에 대한 교회의 잔인한 대우와 한 남자의 도덕적 용기를 그렸다. 부커상 심사위원들은 “놀랍게도 키건은 화를 내거나 설교하지 않으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고 명확하다. 적게 말하면서 많은 말을 한다.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키건이 레이먼드 카버, 앨리스 먼로, 윌리엄 트레버 같은 단편의 대가들과 비교되는 이유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지난 4월 그의 중단편 <맡겨진 소녀>가 국내 출간되며 주목받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말없는 소녀’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는 제72회 베를린영화제 2관왕을 석권하고,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원작 소설은 미국에서 2010년 출간됐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곧 국내에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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