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이트리스트 복원했지만…기시다 '빈손 방한'은 곤란하다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일본의 조치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수출심사우대국(화이트리스트)으로 재지정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로 복귀하면 2019년 7월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 이후 불거진 한·일 무역 갈등이 완전 정상화된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구축 등 당면 현안에서 서로의 도움이 절실한 터에 양국 간 리스크 제거는 다소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조기 답방 소식도 들린다. 당초 올여름 이후로 관측됐지만 이르면 5월 초순, 늦어도 5월 중 방한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기 답방이 성사되면 12년 만에 한·일 셔틀외교가 본격 재가동된다. 화이트리스트 복원과 셔틀외교 재개는 급변하는 국제 경제·안보 환경 아래 시급한 ‘한·미·일 삼각 파트너십 공고화’라는 측면에서 적잖은 진전이다.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무언가 깔끔하지 못한 기분이 드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둘 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양보 조치를 취한 뒤 일본이 뒤따라 호응하며 생색을 내는 듯한 모양새여서다.큰 정치적 부담을 감내하고 먼저 일본으로 날아간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에 기시다 총리는 한동안 유보적 움직임으로 일관해왔다. 말로만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고 강조할 뿐 윤 대통령과 한국민을 위한 행동에는 인색하다. 일본은 ‘2023 외교청서’에서는 한국의 제3자 대위변제를 평가하면서도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 표명’ 사실은 누락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실망을 안겼다. 오죽하면 ‘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좌초하지 않도록 기시다 총리가 호응하라’거나 ‘윤 대통령을 본받으라’고 촉구하는 일본 내 여론이 넘치겠나.

화이트리스트 복원과 조기 답방을 계기로 기시다 총리는 상황을 무마해 가는 소극적 리더십에서 탈피해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의 담대하고 원칙 있는 일본과의 외교적 결단’에 감사를 표한 마당에 소극적인 자세를 고집해선 양국 관계 개선과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진정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위한 정치적 결단을 주저해선 안 된다. ‘우방국’의 성의를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식의 무임승차 정치는 서로가 확 떨쳐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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