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대(對) 중국·일본 동시 무역적자 시대

韓 수출, 中 고성장 덕 봤지만
예전 같은 낙수효과 기대 못해

58년 연속 대일 무역적자
대중 무역흑자로 메워온 구조
동북아 수지 균형 깨지면
외환·지정학적 위험 더 커져

조일훈 논설실장
4월 대중 무역적자가 또다시 20억달러에 육박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단기적 우려에 앞서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 많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적자와 대중국 무역흑자 규모는 거의 같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된 대일 무역적자는 6934억달러.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0년 이후 대중 무역흑자 규모(6980억달러)와 맞먹는다. 역내 교역 구조로만 보면 절묘한 균형이다. 한국은 세계 2, 3위 경제 대국이 포진한 동북아시아 무역수지를 ‘제로’로 유지하면서 1위 국가 미국(누적 흑자 3591억달러)에서 안정적 흑자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포연 자욱한 수출 전선을 새까맣게 누비고 다닌 기업인들이 땀과 눈물로 일구고 다진, 너무나 성공적인 모델이다.

중국 산업은 자본과 기술력을 결합한 한국의 중간재를 먹고 자랐다. 가장 혜택을 많이 본 업종 중 하나가 석유화학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본격 성장기였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자유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석유제품 가격고시제를 폐지하고 전후방 산업 칸막이를 풀었다. 동시에 울산, 여수단지 외에 충남 대산단지를 추가로 조성했다. 여수에 대림산업, 롯데케미칼, 한양화학(현 한화솔루션)이 포진했고 울산에는 유공(현 SK이노베이션), 대한유화가 자리를 잡았다. 대산단지에는 삼성과 현대가 새로 터를 닦았다. 단기 과잉 투자와 공급 확대로 고전하던 국내 업계를 먹여 살린 것은 2000년대를 전후로 고성장 가도를 달리던 중국 시장이었다. 석유화학산업의 가장 기초적인 원료이자 제조업 육성에 필수 품목인 에틸렌의 중국 자급률은 20%에 불과했다.하지만 중국 산업의 성장은 역설적으로 콘크리트처럼 단단할 것 같던 우리 무역 구조에 지각변동급 균열을 몰고 왔다.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제조업종의 자급률이 높아지자 대중 수출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정체 상태로 빠져들었다. 에틸렌만 해도 자급률이 50%를 넘어섰다. 중국 전체 수입에서 한국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때 13.9%(2015년)에서 11.2%로 주저앉았다. 최종 소비재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3년 18.7%에 달했던 삼성전자 스마트폰 점유율은 지난해 2.3%로 쪼그라들었다. 한국 자동차 점유율도 8.9%에서 1.6%로 주저앉았다.

반면 중국 제품의 한국 진입은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컴퓨터 정밀화학원료 무선통신기기 철강판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등 공산품 수입이 크게 늘고 있다. 2012년 22.5%였던 비중은 29.2%로 크게 높아졌다. 같은 기간 807억달러였던 대중 수입도 1545억달러로 두 배 가까이로 불어났다. 한때 628억달러(2013년)에 달했던 대중 무역흑자는 코로나 사태를 기점으로 급격히 줄어들어 지난해엔 12억달러에 그쳤다. 마침내 올 1분기 78억5000만달러라는 기록적인 적자가 났다. 이대로 가면 31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적자가 확실시된다. 일시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엔 기저에 흐르는 추세적 변화가 너무 두렵게 다가온다.

대일 무역적자 추세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무려 58년 연속 적자다. 지난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 속에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독립’을 선언했지만 수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무역적자는 1000억달러를 넘었다.5년, 10년 단위로 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20년, 30년 단위로 옮겨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만성적 적자를 보는 구조로 간다는 것은 무역 강국 한국의 생존에 치명적 위협이다. 동북아의 분업 구조가 깨진다는 것은 우리 경제에 대한 중국 일본의 민감도와 의존도가 동시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도 한국을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나오겠나.

중국의 고성장은 더 이상 전가의 낙수효과일 수 없다. 오히려 한국 산업의 물류와 지리적 비교우위를 삭감하면서 중간재·소비재 판로를 잠식하고 가로챌 뿐이다. 시장 다변화를 떠들지만, 다른 시장에 대한 대안도 마땅치 않다. 미국만큼 큰 시장인 유럽(영국 포함)에서 우리가 1988년 이후 올린 무역흑자는 811억달러에 불과하다. 결론은 도돌이표처럼 다시 중국 시장이다. 중간재와 소비재에서 중국에 대한 비교우위를 확실히 누릴 수 있도록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산업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그것이 대일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외환 및 지정학적 위험을 낮추는 길이기도 하다. 대중·대일 무역적자가 동시화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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