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제2의 김종훈·황철주 막으려면

박근혜 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으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김종훈 전 미국 벨연구소 소장은 성공한 재미동포의 상징이었다. 15세 때 부모와 함께 이민 가 메릴랜드주 빈민가에서 하루 2시간씩 자며 아르바이트로 고학해 명문 존스홉킨스대를 나오고 유리시스템즈라는 벤처기업을 일궈 1조원대 자산가가 됐다. 미국의 자존심이라는 벨연구소 최연소 수장이기도 했다. 그는 이중국적이 문제가 되자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1000억원의 국적포기세(expatriation tax)까지 감수하겠다고 했으나,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자진사퇴했다.

역시 박근혜 정부 때 중소기업청장으로 지명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주식 백지신탁에 가로막혀 공복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주식 백지신탁은 고위공직자가 3000만원어치 이상 주식을 보유하고 있을 때 2개월 안에 매각하거나 백지신탁으로 처분해야 하는 제도로, 그에겐 평생을 걸쳐 일군 기업과 장관 자리를 맞바꾸라고 하는 무리한 요구였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공고를 나온 입지전적 벤처인인 그는, 회사 사업장 로비마다 가로 10m·세로 7m의 대형 태극기를 걸어둘 정도로 투철한 국가관의 소유자이기도 하다.‘한국판 NASA(미국 항공우주국)’ 우주항공청이 파격적인 인사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연봉 상한 폐지부터 △청장급 고위직의 외국인·복수국적자 임용 허용 △주식 백지신탁 예외 허용 △퇴직 시 유관 분야 취업 승인 등 혁신 인재 영입을 위해 그동안 제기된 방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문제는 현실에서의 적용이다. 김종훈 씨가 후보자 때 ‘현안’이란 말을 몰라 영어로 ‘pending issue’로 설명하자 알아들은 것을 두고 관가에선 뒷담화가 있었다고 한다. 중학생 때 이민 가 한자어에 서툰 것이 놀림감은 아니지 않은가. NASA는 2020년 워싱턴 본부의 이름을 ‘메리 W 잭슨 헤드쿼터’로 바꿨다.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공학자 이름을 딴 것이다. 대만 디지털부 장관 오드리 탕은 화이트 해커 출신이자 트랜스젠더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배타성 극복과 진정한 다양성 수용이 혁신 인사 시스템 정착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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