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모 "노사관계는 3층 건물…1층 '법치' 안 세우면 자치·상생도 무너져"

한경 인터뷰 - 조준모 경사노위 노사관계 개선 자문단장

현 노동법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같아
기업 팔다리 자르며 '억지 기준' 강요
결국 노사 갈등 조장, 글로벌 기업 옥죄

노조 회계투명성 문제는 '만시지탄'
조합비·정부지원 계정은 분리접근해야

MZ세대 노조 등장은 '퍼펙트 스톰'
이들 숫자 늘면 노사관계 모습 바뀔 것
조준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 단장은 노동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며 “건설현장의 횡포를 바로잡는 건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했다. /최혁 기자
“노사관계는 3층 건물과 같습니다. 1층은 법치, 2층은 자치, 3층은 배려예요. 1층이 없는데 2, 3층이 있을 수 있을까요. 법치가 없으면 자치나 상생도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을 이끄는 조준모 단장(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동개혁 1순위는 법치”라며 이같이 말했다. 자문단은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의 밑그림을 그리는 곳 중 하나로 지난달 8일 출범했다. 조 단장은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주 52시간제, 파견법 등과 같은) 현행 노동법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사람이 침대에 맞지 않는다고 머리와 다리를 잘라 침대에 억지로 꿰맞추는 상황”이라고 했다. 산업 환경과 맞지 않는 낡은 노동 관련법이 ‘노사 관계를 갈등으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팔다리를 자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혜화동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서 조 단장을 만났다.▷노동개혁에 대해 노조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법치입니다. 그동안 노조는 ‘법치=노사 자치 훼손’이라고 인식했는데, 법치와 자치는 상호충돌되는 게 아니고 법치가 곧 자치의 토대입니다. 법치 없는 자치는 자칫하면 힘 있는 노동시장 ‘핵인싸(핵심 내부자)’, 즉 대기업과 힘 있는 노조 간의 짬짜미(담합)를 조장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해진 이유는 뭡니까.“초기엔 우리나라 산업화가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대기업 중심의 1차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하청업체들은 2차 노동시장이 되면서 (이중구조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중구조 심화는 노동 부문에서 비롯된 측면이 큽니다. 대기업 노사가 서로의 이해관계 속에 ‘담합’을 하고 그 비용을 하청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등 약자에게 전가해온 것이죠. 일례로 1990년 조선업의 하청근로자 비율은 21%였는데, 2021년에는 69%까지 늘었습니다. 파견법도 대기업들로 하여금 ‘불법파견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해 원청이 하청을 도와주기도 어렵습니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법은 뭐라고 봅니까.

“이중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낡은 노동법을 바꿔야 합니다.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도 해법입니다. 조선업종 같은 경우 용접 배관 발판 도장 등 직무에 따른 노동시장이 형성되지 못하다 보니 ‘물량팀’(재하도급)이라는 기형적인 노동 형태가 생겨난 겁니다. 또 과거 정부처럼 ‘비정규직 제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비정규직은 나쁘고, 정규직은 좋은 것이라는 식의 갈라치기 정책을 할 게 아니라 채용형 인턴을 확대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가교를 늘리는 정책이 필요합니다.”▷노사 갈등을 툭하면 법원으로 끌고 가는 ‘노동의 사법화’가 문제란 지적도 있습니다.

“노사 간 이슈가 법원으로 가면 노사상생은 그만큼 멀어집니다. 게다가 법원의 판단을 받는 대형 노동 이슈는 통상임금, 경영성과급, 임금피크제 등 (대기업 중심의) 1차 노동시장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약자인 2차 노동시장의 근로자에게는 남의 얘기 같은 이슈죠. 이런 이슈와 관련된 (노사 간) 다툼이 법원으로 몰리는 데는 모호한 법 규정과 함께 정부의 수수방관도 한몫했다고 봅니다.”

▷정부에서 노조개혁을 강조하는 건 어떻게 봅니까.“우리나라 노조 운동은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의 균형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을 잘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 MZ세대와의 충돌이 점점 늘고 있죠. 기성노조는 결과의 공평함에 방점을 두지만, MZ세대는 절차적 공정과 투명성에 가치를 둡니다. 또 기성노조는 집단연대를 중시하지만, MZ노조는 개인으로 존중받기를 바랍니다.”

▷MZ노조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최근 MZ노조 바람은 ‘찻잔 속 태풍’이 아니라 ‘퍼펙트 스톰’입니다.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노동시장의 약 40%인 MZ세대가 점점 다수가 되면서 기존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모습은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문제는 경착륙이냐, 연착륙이냐인데 지금과 같은 노동법을 그대로 두고서는 경착륙이 불 보듯 뻔합니다. 연착륙을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노사관계가 노동계로 기울어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은 노사 간 힘의 대등성을 확보하기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구체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상생, 노사균형의 시각에서 기존 제도와 관행을 재평가하고 정부에 수정안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특히 글로벌 스탠더드와 관련해선 기존의 입법례 분석 수준을 넘어 해외 선진국에서 어떻게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해볼 생각입니다.”

▷노동계의 사회적 대화 불참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난 정부 때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논의 방향과 안건이 노동계에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도 경영계는 참여했습니다. 당장의 유불리를 따지기보다 일단 참여해서 어떻게 논의하고 풀어갈지를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부의 주 52시간제 개편안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근로시간 제도 개선에 무게를 두고 정부에 권고안을 낸 건 시의적절했다고 봅니다. 다만 이후 논의의 쟁점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9시간이냐, 64시간이냐’로 흐른 건 아쉽습니다. 핵심은 근로시간에 대한 개인의 주권을 좀 더 인정해 기업에는 인력 운영의 숨통을 틔워주고 근로자에겐 휴가 사용 절차를 단순화하는 등 편익을 보장해주자는 겁니다. 생산직 노조가 전체 근로자의 과반이란 이유로 사무직과 연구개발직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결정하는 불합리는 개선돼야 하지 않을까요.”

▷노조의 회계 투명성도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투명성은 사회적 책무가 됐습니다. 노조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노조의 회계투명성 문제는 사실 노조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어야 하는 문제인데, 만시지탄이라고 봅니다. 다만 노조 회계 투명성 문제는 조합비 계정과 정부지원 계정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혈세가 지원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지만, 조합비로 운영되는 부분은 일정 비율 이상 조합원이 요구하는 경우에 공개하고 그 대상도 조합원에 한하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건설현장의 폭력을 뿌리 뽑겠다’고 하는데 노조는 ‘탄압’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봐야 합니까.

“건설현장의 노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채용 강요, 무노동 임금 갈취 등은 지난 정부 때도 건설현장에서 만연해 있었지만 경찰과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모두 정권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건설현장은 우리 일상 주변에 있기 때문에 (불법을 바로잡지 않으면) 법치 무력화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사회 전반에 ‘법치 부재’ 인식을 키울 수 있습니다. 건설현장의 횡포를 바로잡는 건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비정상의 정상화입니다.”

■ 조준모 교수는 20년 넘게 노동정책 관여…尹정부 노동개혁 밑그림

조준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장(60·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은 20년 넘게 집단적 노사관계, 직업훈련, 고령화 대책 등 고용노동정책에 관여해온 노동경제학자다. 경제 성장과 근로자 간 불합리한 차별 개선,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선 자유시장경제에 기반해 급변하는 산업환경에 맞게 노동법과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정권에 관계없이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해왔다.1962년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한국노동경제학회장,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 부총장을 지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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