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착륙도 경착륙도 아니다…美, 침체없는 '노 랜딩' 시나리오 급부상

곳곳에서 '경기 호조' 신호
고용시장 여전히 탄탄하고
지난달 소매판매 8.8% 증가
부동산 최악 국면 빠져나와

'짧고 약한 침체'는 불가피
본격적인 금리인상 효과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일 뿐
악화되는 기업실적 고려해야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미국 경기가 ‘노 랜딩(무착륙·no landing)’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그동안 경기 침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소프트 랜딩(연착륙)’이냐 ‘하드 랜딩(경착륙)’이냐가 관심이었다. 하지만 아예 침체 자체가 없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것이다.

강한 노동시장의 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학자 사이에서 노 랜딩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동안에는 짧고 약하게 침체를 겪고 지나가는 것 정도가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성장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침체 자체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등장했다.

노 랜딩은 최근까지도 기대하기 힘든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고용, 물가 등 미국 경제지표가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최근 전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노 랜딩 가능성이 부상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노동시장 상황이다. 지난 3일 공개된 미국의 1월 실업률은 3.4%로 1969년 5월 이후 54년 만의 최저치였다. 1월 증가한 비농업 일자리 수는 시장 추정치의 3배인 51만7000개였다.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한 해고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미국의 일자리는 여전히 충분했다.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견조한 점도 노 랜딩 기대에 불을 지폈다. 마스터카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소매판매(자동차 제외)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8.8% 늘었다. 상품 지출은 둔화했지만 서비스 지출이 크게 늘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지난달 가구당 신용·직불카드 사용액이 1.7% 늘며 작년 12월 마이너스(-1.4%) 대비 큰 폭의 개선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일부 주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 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가 최악의 국면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의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 평균이 지난달 연 6.27%로 작년 10월 전고점(연 6.9%)보다 0.6%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모기지 금리가 내리면 주택 매수세가 살아날 수 있다.미국 리서치회사 르네상스매크로의 닐 두타 이코노미스트는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다”며 “노 랜딩 시나리오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

WSJ는 그러나 아직 미국 월가에서 노 랜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전했다.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침체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그 근거 중 하나는 기준금리 인상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실제 드러나기까지 시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엔 금리 인상이 고용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또 미국 기업의 실적 약화도 변수다. 미국 보험사 네이션와이드의 미국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캐시 보스차칙은 “기업의 수익은 갈수록 줄고 있다”며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면서 올해 중반부터 경기 소강이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 랜딩 과정에서 물가상승률이 어떻게 될지도 변수다. 통상 성장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잡히기 힘들어서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성장이 가속화할 경우 Fed의 목표인 2% 물가상승률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이 경우 Fed의 긴축 기조 전환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금리 인상 폭이 커질 수 있다. 미국 경기가 최종적으로 노 랜딩하기는 힘들어질 수 있다. 엘렌 젠트너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노 랜딩은 소프트 랜딩과 비슷한 개념”이라며 침체 정도가 더 낮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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