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거꾸로 가는 한국 전기차 보조금

美, 요건 맞으면 10년간 7500弗
한국은 매년 100만원씩 줄여

김일규 산업부 기자
“미국은 (전기차 한 대당 보조금) 7500달러를 2032년까지 지속적으로 줍니다. 하지만 한국은 1년에 100만원씩 보조금이 줄어들어요.”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전략기획담당)이 지난 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이다. 공 사장은 “우리의 전기차 정책도 전체적인 산업 전략 측면에서 한 번 더 살펴봐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이날 국정감사에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한국 자동차산업에 미칠 영향과 대응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달 발효된 IRA에 따르면 미국은 북미산 전기차에만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세액공제)을 지급한다.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지 않고 있는 현대차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유예하거나 면제하는 방안을 미국 측과 협의 중이다. 현대차의 새로운 미국 전기차 공장이 2025년 완공될 예정인 만큼 최소한 그때까지만이라도 차별적 보조금 지급을 미뤄달라는 것이 우리 측 주장의 골자다.

IRA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요건만 맞으면 앞으로 10년간 동일한 금액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미국이 IRA를 통해 전기차산업 육성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한국은 미국과 반대다. 전기차 대당 보조금을 계속 줄이고 있다. 2020년 대당 800만원이었던 국비 보조금 최대 지원액은 2021년 700만원으로 100만원 깎인 데 이어 올해는 600만원으로 또 낮아졌다. 대당 보조금은 줄이는 대신 전체 지원 대수를 늘리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보조금까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면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참에 보조금 제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착순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데다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지원금이 최대 수백만원까지 차이 나면서 소비자 혼란이 커지고 있어서다. 그동안 여러 전문가가 제기한 문제지만 정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 ‘2035년 무공해차 전환’을 담았다. 전기차를 조기에 대중화해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무공해차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회사 혼자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국과의 ‘이인삼각’에서 이길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정부의 과감하고 전향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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