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반려동물에 유산 남길 수 있을까 [조웅규 변호사의 품격있는 상속]

반려견과 함께 사는 A씨
전 재산 탕진한 친동생 아닌
어린 조카와 반려견에게 상속 희망

유언장 공증방식도 있지만
자칫하면 효력 인정 못받을 수 있어
반려동물은 상속 대상도 아니야

신탁 방식이면 실현 가능
어린 조카, 생애 주기별로 단계적 상속
반려견 돌봐주는 조건의 상속도 가능
지속적 관리‧감독 가능한 것도 장점
‘조웅규 변호사의 품격있는 상속’은 상속‧자산관리와 관련된 핵심 내용을 살펴봅니다. ‘완벽한 상속’을 계획하는 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을 유형별로 들여다봅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상속 및 자산관리 전문가인 조웅규 변호사가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상속분쟁 동향, 분쟁 방지를 위해 고려해야 할 점, 분쟁 발생 시 대응법 등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상속 준비 단계에서의 효과적인 자산관리 방안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 주]
사진=한경DB
A씨는 배우자와 사별하고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실거주 중인 아파트 한 채와 상가 점포를 소유하고 있어 연금과 차임으로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문제는 유일한 가족인 동생 B씨였다. 그는 수년 전부터 무리한 주식투자로 전 재산을 탕진했고, A씨로부터도 많은 돈을 빌린 뒤 갚지 못하고 있다.A씨는 상속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할 경우 모든 재산이 B씨에게 상속된다는 것을 듣고 걱정이 앞선다. A씨는 어떻게 상속을 준비할 수 있을까.

상속을 준비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살아있는 동안을 계획하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하지만 상속을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단 상속을 준비하기만 하면, 높은 확률로 생전에 보유하던 재산을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승계할 수 있다.

가장 쉽고 친숙한 방법은 유언이다. 유언은 종이, 펜, 도장만 있으면 가능하다. 내가 원하는 내용의 유언을 직접 쓰고, 작성한 날짜와 주소를 기재한 후 자신의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으면 된다. 매우 간단하다.하지만 간단하다고 해서 꼼꼼하게 신경 쓰지 않았으면 유언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대법원은 형식적 엄격주의를 취하고 있다.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 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대법원 2004. 11. 11. 선고 2004다35533 판결 등)
유언을 한 사람의 진의가 확인되더라도 요건을 갖추지 않은 유언은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검토하는 걸 추천한다.

유언이 무효화 될 것을 우려한다면, 유언을 공증받아 그 효력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이다.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증인 2인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하는 것이다.

공증인은 법무부장관에 의해 임명된다. 법률행위나 기타 사건에 관한 사실에 대해 공정증서를 작성하거나 사서증서에 인증을 부여하는 권한을 가진 자다. 따라서 공증인이 관여한 유언의 경우, 유언의 요건이 결여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무효가 될 위험도 그만큼 적다. 다만, 공증을 위한 비용이 드는데, 상속재산의 규모에 따라 수십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발생할 수 있다.A씨의 사례로 돌아와서 상속을 준비해보자.

A씨는 동생인 B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긴 하지만 언제든 무리한 투자를 할 위험이 있어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대신에 A씨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조카 C를 위해 재산을 남기고 싶다. 이 경우 A씨는 자기 재산을 C에 남기는 유증을 함으로써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A씨가 위와 같은 내용으로 유언장을 작성하면, A씨가 생전에 보유하던 부동산은 A씨의 사망 후 C에 승계되며, C는 유언장을 제출해 그의 명의로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다.
사진=한경DB
만약 A씨가 홀로된 자신을 수년째 곁에서 지켜주고 위로해주는 반려견에게 재산 일부를 상속하길 원한다면, 이 경우에도 A씨는 유언으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언만으로는 A씨의 희망을 그대로 실현하기 어렵다.

유언은 법에서 정하고 있는 것을 법에서 정한 방식으로 해야만 효력을 발생한다. 법에서 상속재산을 승계할 사람을 지정하는 방법으로 정하고 있는 유증의 경우 반려견은 그 상대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유증은 그 상대방이 법인격을 가져야 하는데 반려견은 법적으로 ‘물건’에 해당할 뿐 법인격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유증의 상대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유증에 조건을 설정할 수 있으므로, 반려견을 잘 돌봐주는 것을 조건으로 누군가에게 아파트나 상가를 유언으로 증여하면 간접적으로나마 반려견을 위해 상속재산이 쓰이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완벽한 방법으로 보기 어렵다. 위와 같은 조건은 그 준수 여부가 정기적이고 지속해서 관리·감독 돼야 하지만, 유언은 집행 후에 이를 관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려견을 돌보는 것을 조건으로 재산을 남기더라도, 재산을 승계한 사람이 반려견을 돌보지 않고 재산만 가로채는 것을 방지할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미국 테네시주에 있는 보더 콜리 종 루루가 빌 도리스로부터 500만 달러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례, 칼 라커펠트가 수백억 원의 재산을 반려묘 슈페트에게 상속하기로 한 사례,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반려견에게 수백억 원의 재산을 증여한 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신탁이다. 신탁은 재산을 특정한 사람에게 귀속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설정할 수 있다. 신탁을 설정하면서 신탁된 재산이 반려동물의 복리와 보살핌을 위해 사용되도록 정하고 반려동물의 사후에는 남아있는 신탁재산을 특정인에게 귀속시키거나 다른 공익 내지 사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정해 반려동물의 돌봄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반려동물이 그 소유자의 사망이나 행위능력 상실 이후에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신탁을 이용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한국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400만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만큼 반려동물을 위한 신탁의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A씨의 경우에도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조카 C를 위한 상속도 보다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C에 부동산을 승계하더라도 부모인 B씨가 이를 처분해 투자자금으로 사용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C에 곧바로 부동산의 소유권이 승계되도록 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 대신 C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각 부동산의 임대료를 이용해서 매달 일정한 금액의 용돈과 학비를 지급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C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그가 받은 급여의 일정 비율에 상당하는 보상을 신탁급부로 지급하며, C가 30세가 될 때 아파트의 소유권을, 40세에 상가의 소유권을 이전하도록 정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B씨에 의한 재산처분 위험을 피하고 C에 대한 지속적인 보살핌을 실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탁에 처음부터 신탁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가 있어, 신탁의 목적에 맞게 정기적이고 지속해서 신탁급부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살펴본 것처럼, 상속을 준비하는 것은 간단한 유언에서부터 복잡한 유언대용신탁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하다. 본인이 처한 상황과 희망하는 내용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 준비할 것인지를 선택하면 된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건 이를 통해 상속을 준비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결과에 있어서는 현저한 차이를 낳는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A씨의 경우에도 유언이나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상속을 준비한다면, A씨의 자산이 B씨에게 승계된 후 무리한 투자로 상실되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A씨가 희망하던 대로 반려견과 조카 C에 안정적이고 윤택한 미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민법/신탁법)
제41기 사법연수원 수료
한국신탁학회 상임이사
중견기업연합회 기업승계 담당 변호사
상속신탁연구회 회장
Estate Planning Center 상속설계 본부장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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