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의선에 "실망시키지 않겠다"더니…6000억 날릴 판

깎인 보조금만큼 인센티브 고려
현대차·기아 "연간 약 6000억 이상 소요될 듯"
"'현대' 인지도 올라가면서 제값받기 겨우 안착됐는데"
앨라배마 공장 전기차 라인으로 바꾸는 방안도 강구
현대차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 <현대차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간)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으로 현대차그룹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 정부가 구매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대상에서 빠지면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해졌다.

당장 이 법의 발효일이었던 지난 17일부터 미국 현대차 영업점에서 아이오닉5와 기아 EV6를 구매한 소비자에게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다. 이 법안은 미국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 보조금을 지원하는데, 아이오닉5와 EV6는 현재 전량 국내에 있는 울산공장 등에서 생산돼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미 현지 생산이 빨라야 오는 2025년부터인 데다 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 주력인 아이오닉5와 EV6를 대체할 만한 차량도 없어 실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9일(한국시간)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IRA로 깎인 보조금만큼 자체적으로 현지 소비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대응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만큼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북미 전기차시장 점유율 유지가 중요하다. 현대차그룹의 북미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9%로 테슬라(70.1%)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걸림돌은 비용이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3만4518대의 전기차를 팔았다. 소비자가 기존에 받던 7500달러(약 980만원)를 회사 측이 다른 방식으로 보조해줄 경우 단순 계산해도 약 3300억원, 연간으로 치면 600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간다.

현대차는 지난 2분기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는데, 이는 미국 시장에서 공급량을 훨씬 능가하는 초과 수요 덕에 소비자에게 투입되는 판매 인센티브를 줄이면서 차를 비싸게 팔 수 있었던 것이 한 요인이었다. 시장점유율 방어를 위해 전기차 보조금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현지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경우, 이러한 실적 개선 요인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인센티브 절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인 6208억원의 비용을 아낀 것으로 추정된다"며 "미국에서 현대차 브랜드 인지도가 오르면서 대당 인센티브가 71% 감소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미 앨라배마 공장에서 다른 전기차 차종을 생산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수도 있다.

당장 오는 11월부터 GV70 전동화 모델을 생산하는 앨라배마 공장 라인 일부를 아예 전기차 전용 라인으로 바꾸는 방안이다. 이 경우 노조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주요 차종의 해외생산을 결정할 때 사측이 노조와 협의하기로 돼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예정인 전기차 전용 공장은 2025년이 돼야 가동이 가능하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생산라인은 보통 1~2년치 계획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에 당장 다른 모델로 바꾸는 것이 어려울 뿐더러, 특히 전용 전기차 라인으로 변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라며 "노조가 합의해줄지도 미지수"라고 했다.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 생산을 앞당기지 않으면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수 있어 결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조지아주 공장을 비롯 미국에 총액 100억달러가 넘는 투자 결정을 한 데 대해 방한 일정 중에 직접 정 회장을 만나 "미국을 선택해 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고, 투자 결정에 절대 실망하지 않도록 미국 정부도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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