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 딱 걸린 KTX 기장…직원이 단속하자 "두고 보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수정
법원은 "해고 안돼"직장에서 비위를 저질러 형사처벌까지 받았다면 해고가 가능할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해고가 가능하다고 봐야겠지만 법원의 판단은 그렇지 않았다. 인사담당자들 입장에서는 징계 시 참고해야 할 판결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한국철도공사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공사 측의 청구를 기각하고 근로자 승소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KTX기장이면서 무임승차…단속 직원에 "두고 보자"
2000년부터 KTX 기장으로 근무해온 A는 2019년 6월 경 배우자, 지인 2명과 함께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열차에 승차권을 발급받지 않고 승차했다. 승무원 B가 이를 적발하고 원래 운임에 더해 부가운임을 부가하려하자 A는 B에게 "나 기장이고 출퇴근 하는 중"이라며고 말했다. 기장은 출퇴근 때 승차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사원증 제시를 요구하는 B에게 "두고보자, 가만히 있지 않겠다, 무조건 불이익을 줄 것"이라며 겁박했고, 인계를 위해 인근 역에 전화를 걸려는 B의 손을 잡으려 하고 손을 휘두르기도 했다. A는 이 사건으로 인해 철도안전법 위반죄로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결국 한국철도공사는 2020년 9월 징계위를 거쳐 해임 통보를 내렸다.
A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가 해임이 위법하다고 판단하자 한국철도공사가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철도공사는 △열차를 무임 이용하려는 의도 △위법한 유형력을 행사해 B에 업무를 방해한 점을 징계 사유로 삼았다. 또 품위유지 의무를 저버렸고 형사처벌을 받은 점, 언론에 사실이 밝혀지면서 명예가 실추된 점 등을 들어 해임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
재판부는 "일단 출발시간이 임박한 열차에 승차하고 검표할 때 운임을 지불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비록 아내에게 어린이용 승차권을 끊어달라는 요청도 하긴 했지만 운임을 면탈할 의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박도 구체적으로 해악을 고지한 게 아니라 정차역 인계를 위해 연락을 취하면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우발적으로 벌인 행위고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없었다"고 봤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비위 정도가 해임처분을 할 정도로 현저히 무겁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기장으로서 승무원에 대한 업무상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서 협박을 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철도공사 측 주장도 일축했다. 재판부는 "본인이 운임 지불 없이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직원임을 알리려고 기장이라고 밝혔고, 결국 사원증을 보여주지 않아 B도 이를 온전히 믿지 않았다"며 "B가 '기장님이라고 하셨죠' 되묻자 '아니다'라고 숨긴 점을 보면 업무상 지위를 이용한 갑질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 진행 중이다.
○'형사처벌=해고' 아냐
직장에서 친 사고로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해고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형사처벌은 면했지만 해고사유가 된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경주에 소재한 어린이집 대표가 중앙노동위원회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한 바있다.대표는 2019년 10월 어린이집 CCTV를 확인하면서 보육교사의 아동학대 의심 정황을 포착했다. 아동을 향해 문을 반대로 밀어 넘어트리거나, 낮잠을 거부하는 아이 머리를 볼펜 쥔 손으로 누르는 등 8명에게 학대 의심 행위를 했다. 결국 보육교사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 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구지법 1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소 거칠거나 강압적인 모습이 있기는 하나, 훈육 내지 보육의 목적이었다는 이유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형사 처벌 유무와 별개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동학대 의심 정황으로도 어린이집에 손해를 끼쳤거나 끼칠 우려가 있다”며 “어린이집 명예를 크게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이런 행위로 인해 보육원에 큰 피해가 있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인사담당자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법원이 징계 과정에서 형사처벌이라는 사실 보다 그로 인해 회사와의 신뢰관계가 어느 정도로 상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야한다는 점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해고의 정당성은 어느 한두 가지 사정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전인격적 판단"이라며 "형사처벌 여부가 정당성 판단에 영향은 주겠지만 절대적이지는 않고, 근로관계를 종료할 만큼 신뢰관계가 훼손되었는지 관점에서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기업의 과거 징계 사례도 중요하다. 실제로 KTX기장 사건에서 재판부는 과거 KTX의 다른 기장이 담배를 피다가 이를 제지하는 승객을 폭행한 사건에서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린 사례를 들어 "해고까지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회사가 일부 사건에서 기강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이후 징계 과정에서도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