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손정의 실패'가 새삼 일깨우는 투자의 정석

‘투자의 신’으로 불리던 손정의 회장이 진두지휘하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대규모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경영진 급여를 대폭 삭감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40%, 최고경영자(CEO)는 15% 연봉이 깎였다.

이런 비상 경영은 주력 자회사이자 운용자산 1500억달러로 ‘세계 최대 기술주 펀드’인 비전펀드가 지난 한 해 3조7000억엔의 기록적인 손실을 낸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다. 비전펀드가 투자 중인 세계 470여 개 정보기술(IT) 기업은 글로벌 금리 인상, 공급망 혼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봉쇄·규제 등 겹악재로 최근 실적과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당분간 실적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투자 중인 핵심 기술기업 34개 중 32개가 지난해 순손실을 낼 정도로 부진이 심각해서다. 금융시장 여건도 악화일로다. 최근 3개월간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60회를 웃돌 만큼 빠른 통화긴축은 비전펀드를 진퇴양난으로 몰고 있다. 투자 자산을 처분해 현금을 마련하며 버텨보려 해도 IPO 시장이 얼어붙은 탓에 쉽지 않다.손 회장의 추락은 이른바 ‘손류(孫流)’로 주목받던 베팅 투자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그는 감을 앞세운 독특한 승부 호흡으로 비전펀드를 일궜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만나 보니 ‘눈이 강력하고 빛이 나서’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비전펀드는 압도적 유동성을 앞세워 ‘묻고 더블로’ 식으로 돈을 퍼부어 경쟁자를 제압하는 방식을 애용해왔다. 우버 알리바바 등에서 큰 재미를 봤다. 쿠팡에도 무려 30억달러를 쏟아부어 한국 유통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부상시켰다. 하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난 투자가 더 많다. 사무실 공유 기업인 위워크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엄청난 손실로 이어졌고 작년 6월 뉴욕증시에 화려하게 입성한 디디추싱도 데이터 유출을 우려한 중국 정부의 압박에 밀려 지난주 초 결국 상장폐지되고 말았다. 쿠팡은 작년에도 1조8627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고 뉴욕증시 상장 14개월 만에 주가는 70%가량 폭락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 중인지 드러난다”고 했다. ‘몰빵 투자’로 과욕을 부리거나, 한두 번 성공에 취해 과거 방식을 답습한다면 아무리 수완이 좋아도 실패를 하게 돼 있다. 펀딩이 아니라 돈을 조금씩 벌어가면서 하는 것이 원래 투자의 정석이다. 도요타자동차, 소니에 이은 일본 3위 기업 소프트뱅크의 위기는 기본을 지키는 투자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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