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율 상승세 일단 진정됐지만 악재는 첩첩산중

달러당 1300원을 돌파할 기세로 무섭게 치솟던 환율이 어제 1원40전 내린 1237원20전에 마감했다. 그제는 17원60전이나 떨어지는 등 사흘 연속 하락세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금리 인상 횟수가 제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세는 일시적 현상일 뿐 대내외 경제·금융 환경이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해 평균 환율이 1144원60전, 올초엔 1191원80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230원대 환율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경제 상황에 따라 환율은 언제든 다시 고삐가 풀릴 수 있다.코로나19 사태 이후 26개월 만에 생산·소비·투자가 동시에 감소했다는 소식은 단기적 환율 하락에 안도할 정도로 한가한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통계청의 4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 산업 생산은 전달보다 0.7% 줄었다. 소매판매액지수(-0.2%)는 두 달째, 설비투자(-7.5%)는 석 달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10개월 연속 하락했다. 물가 급등 속에서 경기 관련 지표가 일제히 고꾸라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도 한층 커졌다.

여기에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무역수지 누적 적자가 109억달러에 달해 경상수지 적자 비상이 걸렸다. 산업연구원은 ‘하반기 경제·산업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가 158억달러로 금융위기 때인 2008년(-133억달러)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경상·재정수지가 적자를 보는 ‘쌍둥이 적자’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가계와 기업, 정부의 부채는 5000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둘러봐도 온통 악재투성이요, 첩첩산중이다. 외환위기는 신흥국만의 위기였고, 금융위기 때는 금리를 낮춰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마땅한 수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경제 체질 개선과 산업 구조 개혁의 큰 그림을 그린 뒤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모처럼 나온 기업들의 대규모 국내 투자계획이 실현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행정적으로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이 가계와 기업에 충격을 줘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져들지 않도록 속도 조절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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