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韓銀 총재 자리를 오래 비워둬선 안 되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간 회동 불발로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후임 인선이 완전히 안갯속이다. 양측 이견 조율을 기대하는 가운데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오히려 “인사권을 대통령이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내달 1일 후임 총재의 취임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초유의 한은 총재 공백 사태가 금융시장에 어떤 불안 요인이 될지 미지수다.

그사이 대내외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이 내년 말까지 연 2.75%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지난 16일 금리 인상(연 0.25~0.50%)을 시작했다. 영국 기준금리는 그제 연 0.75%로 인상돼 코로나 이전 수준이 됐다.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우려에 각국의 ‘돈줄 죄기’가 본격화한 것이다.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줄 잇는 금리 인상이 어떤 파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도 이런 추세를 따라 기준금리를 올리면 1800조원이 넘는 가계빚의 이자 부담이 연간 40조원 더 늘어난다는 보고서도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러시아의 디폴트 가능성, 각국 수출 제한에 따른 원자재 가격 폭등, 공급망과 물류 마비 등 산 넘어 산이다.이런 상황에서 물가와 금융 안정을 책임지는 한은 총재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금융통화위원회가 합의제 의결기관이고 총재 부재 시 금통위원 중 한 명이 의장을 대신 맡게 된다는 설명이지만, 한은 조직 불안과 정책 실기(失機) 우려까지 잠재우긴 어렵다. 내달 14일 또는 5월 25일 금통위 회의까지 총재 부재가 길어지면 물가 대응 등 통화정책에 예상치 못한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새 정부는 한은 총재 없이 경제정책 기조를 가다듬어야 할 판이다.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 논란 등으로 신·구 권력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지만, 이를 핑계로 한은 총재 인선을 마냥 미뤄선 곤란하다. 한은 총재 임기 만료가 임박했는데 후임 인선을 늦춘 것이 새 정부 의중을 반영하기 위한 취지였다면, 이제 와서 ‘인사권’ 운운하는 것도 군색한 논리다. 정부는 당선인 측과의 합의를 통해 하루빨리 후임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경제 불확실성을 하나라도 줄이는 게 절실할 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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