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新제조업 혁신 시급하다

이정선 중소기업벤처부장
지난 4일 백악관 건너편의 아이젠하워 행정동. 미국 제조업 강화 전략을 발표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뒷배경에 내걸린 슬로건은 ‘Made in America’였다. 바이든이 1일 연두교서에서 자국 내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운 것도 ‘Made in America’다. 미국산 부품으로 미국에서 상품을 제조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제조업 부흥을 부르짖는 건 미국만이 아니다. 독일은 10년 전부터 ‘인더스트리 4.0(4차 산업혁명)’을 외치며 글로벌 제조업계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천명한 이후 첨단 제조혁신에 나서고 있다. 2045년 미국과 대등한 제조 강국으로 부상한다는 목표다. 기술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의 씨앗이 여기에서 잉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역시 ‘2020 제조기반기술 진흥정책’을 채택해 제조업의 체질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제조혁신에 사활 거는 강대국

한때 사양산업으로 여겨졌던 제조업에 강대국들이 힘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차례의 학습 효과가 제조업 재무장의 동력이다. 첫 번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타격이 컸던 건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이른바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였다. 제조업의 중요성은 코로나19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물류난 등으로 국경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관광 등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상당한 고충을 겪고 있다.

제조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미·중 갈등의 가속화와 잇따른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전면 재편되고 있어서다. 자동차용 반도체 대란, 요소수 사태 등은 제조업이 ‘경제 안보’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값싼 인건비를 좇아 해외로 공장을 옮기던 오프쇼어링 방식도 이제 한계를 맞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9000여 한국 중소기업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장기간 셧다운 된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지금 강조하는 제조업이 전통적인 굴뚝산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제조업에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산업이 융합된 신(新)산업이다. 디지털 전환을 통한 ‘신제조업 혁명’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제조업의 진화다. 독일 공작기계 회사 트럼프는 제품을 판매하는 대신 사용한 만큼 사용료(pay per use)를 내는 방식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제조와 금융이 접목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규제에 발목 잡힌 한국

전 세계가 제조업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한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되레 제조업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를 숨 가쁘게 쏟아낸 것이 지금 정부다. 원자재 가격 급등, 코로나19 악재에도 주 52시간제를 비롯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했다. 강도 높은 노동 규제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부르고 있다. 야근 수당이 사라진 제조 현장의 근로자들은 배달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정부의 의지도 부족했다. 내수 중심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성과나 벤처 붐에 더 솔깃해 제조업을 등한시했다고 느끼는 기업인이 많다. 제조업에 대한 철학의 빈곤과 노동인권의 프리즘으로 제조업을 투영시킨 왜곡의 결과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지금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독일처럼 더 많은 글로벌 히든챔피언이 나와야 한다. 수출은 결국 제조업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곧 출범한다. 무엇보다 제조혁신을 위한 ‘스마트’한 전략을 기대한다. ‘Made in Korea’의 신화를 다시 써야 할 때다.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