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점거' 정부는 손놓고…법원도 판결 '차일피일'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 본사와 허브터미널 앞에서 '무력시위'에 나서면서 지난 2018년 택배노조가 파업 과정에서 전국 허브터미널의 택배차량 출입을 막아 업무방해죄 혐의로 기소됐던 사건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최근 이 사건을 맡은 2심 법원들이 선고를 잇따라 연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법원이 별다른 이유 없이 책임을 미뤄 사회적 혼란을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잡한 쟁점 얽힌 택배파업 사건 지난 2018년 택배기사 조합원들이 전국적으로 파업에 나섰다. 이에 CJ대한통운은 업무 마비를 막기 위해 자신들이 직접 고용한 '직영 택배기사'를 다른 사업장에서 불러와 대체 투입했다. 이에 조합원들이 대체 투입 차량을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등 택배 업무를 방해했고 결국 전국 다수 법원에 기소됐다. 2020년에만 전국 각지서 5건의 형사 판결이 쏟아졌다. 그런데 거의 유사한 사실관계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중구난방이다.

노동조합법은 노조가 업무방해 행위를 했어도 '정당한' 쟁의행위라면 위법성이 없다고 봐서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조법은 쟁의행위 시 '사용자'가 당해 사업과 관계 없는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만약 대체인력 투입이 위법하다면 이를 방해한 행위도 '정당 행위'로 무죄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대체인력 투입의 위법 여부는 CJ대한통운을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결론이 난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이 집배점이나 대리점과의 계약관계에 있을 뿐, 자신들과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니므로 자신들이 택배기사들의 사용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CJ대한통운이 사용자가 아닌 제3자라면 대체인력으로 내 화물을 배송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되고, 이를 방해하는 행위가 업무 방해죄가 된다. 반면 사용자로 보는 경우엔 추가 쟁점이 발생한다. 회사가 투입한 다른 터미널의 대체 인력이 '당해 사업과 관계 없는 자'로 볼 수 있는지 해석 문제로 이어진다. 만약 다른 터미널 택배기사를 대체 투입한 게 '당해 사업과 관계 없는 자'를 투입한 거라면 노조법을 위반한 행위고, 이를 방해한 택배노조의 행위는 정당행위가 될 수 있다. 반면 지역 터미널이 아닌 CJ대한통운 회사의 전국 차원으로 보면 다른 터미널 기사 투입도 '관계 있는 자'를 투입한 게 되므로 적법한 인력 투입이 되고, 택배노조의 방해는 유죄가 될 공산이 크다.

◆3건은 유죄, 2건은 무죄...중구난방 1심 판결

포문은 대구지방 김천지원에서 열렸다. 2020년 2월 12일 법원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조합원 12명에 무죄를 선고했다.이들은 대한통운 김천터미널에서 화물 상차 위치에 차량을 주차해 상차 업무를 방해했다. 또 대체 택배 차량이 터미널을 나올 때 차량을 강제로 세우고 화물을 검사한 다음, 부패나 손상 우려가 있는 상품을 제외한 화물은 차량 밖으로 끌어내렸다.그런데 법원이 대체차량 투입이 위법하다고 보고 택배기사들의 행위가 '정당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무죄 판결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라는 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대리점주와 계약 관계에 있는 택배기사의 사용자를 CJ대한통운으로 봤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던져줬다. 사용자의 대체투입이 가능한 '당해 사업'의 범위도 좁게 해석해서 타지역 택배기사를 '해당 사업과 관계 없는 인력'으로 판단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두 번째 나온 창원지방법원 판결에서는 일부 택배기사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형(선고유예)을 내렸다. 이 지역 조합원들은 터미널 입구에서 차량 밑에 들어가고 드러눕거나,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아 진행을 막는 방식으로 대체 차량의 진입을 막았다. 하지만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타지역 기사 대체 투입이 적법한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며 판단을 피했다.

이후 가장 눈길을 끈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2020년 9월 9일 선고에서 피고인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 조합원들이 부산사상터미널 출입로에 택배차량 6대를 세워 차량이 운행되지 못하게 하거나, 직영 차량 앞에서 수십 명이 몸을 밀착해 서있거나 운전석을 위협적으로 두드리는 방식으로 업무를 방해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아예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라고 명시적으로 판단해 업계에 충격을 던져줬다. 그 근거로 CJ대한통운이 모바일 어플로 실시간 업무 수행을 지시하는 점, 택배기사 출근시간을 정하고 유니폼 착용 등 업무 지침을 구체적으로 교육하는 점, 택배기사의 실적 등을 대한통운이 집배점과의 재계약 여부시 반영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대체 투입도 위법하다고 봤다. 이 판결은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아예 CJ대한통운이 사용자라고 본 부분은 업계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이후 10월에는 네번째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은 조합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70만원의 벌금형에 처했다. 이 법원은 "대한통운과 택배기사들 사이에 근로계약관계가 없다"며 대한통운이 사용자라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섯번째로 나온 울산지방법원 판결이 혼란에 정점을 찍었다. 법원은 기소된 조합원 5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형을 내렸다. 얼핏 회사의 승리 같지만 다만 CJ대한통운이 사용자라고 판단했다. 다만 대체 근로자인 다른 사업장의 직영택배 기사를 투입한 것은 "해당 사업과 관련 있는 자"를 투입한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사용자'인 CJ대한통운의 '적법한 대체인력 투입'을 방해한 조합원들의 행위는 위법하다는 취지다. 기존 판결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해석이다.

◆2심 선고 잇따라 연기..."법리 복잡하고 산업현장 파장도 부담"

이로서 2020년에 나온 5건의 1심 판결 중 3건은 유죄다. 다만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이 3건이다. 대체기사 투입과 관련해서는 위법하다는 판단이 2건, 적법 판단이 2건, 판단 유보가 1건이다. 결론이 엇갈리다 못해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이런 가운데 첫 2심 판결이 지난해 8월 나왔다. 대구지방법원 제5형사부(재판장 김성열)는 지난해 8월 11일 김천터미널 사건 1심을 뒤집고 뒤집고 택배기사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유죄를 선고했지만 대한통운의 사용자성은 인정하는 취지라 회사 입장에선 절반의 승리다. 2심 재판부는 "회사(CJ대한통운)가 각종 지침이나 매뉴얼을 마련해 실시간으로 업무수행을 확인하고 지시를 내렸으며, 각종 지표로 평가도 했다"며 "터미널 운영 방식도 회사가 결정했고 집배점주는 권한·책임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CJ대한통운이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의미다. 다만 1심과 달리 대체인력 투입이 적법하다고 봤다. 이를 바탕으로 택배기사들이 화물을 끌어내린 행위 등은 위법하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후 2심 판결이 나오면서 단독 판사 판결이 많았던 1심과 달리 합의부에서 복잡한 법리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법원은 잇따라 선고를 연기했다.

창원지방법원 사건과 부산지방법원 사건의 2심 모두 별다른 이유 없이 선고가 연기된 상황이다. 대법원 판결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법리가 너무 복잡하고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도 상당히 크다는 점, 하급심에서 판결들이 지나치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 등을 법원이 의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만약 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사용자라는 판결이 나오게 되면 업계는 하청을 사용하고 있는 제조업체들는 물론 플랫폼 업체들까지 모두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로 노사관계와 노동법계의 판을 흔들 수 있는 이슈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현재 판결로만 보면 CJ대한통운 대체인력의 업무를 막은 택배노조의 행위가 유죄라는 판결이 5건 중 4건이다. 특히 학계도 이 판결의 의미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입이 있는 사람은 한마디씩 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법원에서 조속히, 근본적으로 이를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노동위원회도 이 판결 이후 "택배노조의 사용주는 CJ대한통운"이라는 판정을 내놓으면서 혼란을 더한 바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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