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원전에서 천궁까지…12년의 협력

류시훈 산업부 차장
지난주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국산 지대공미사일 ‘천궁Ⅱ’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될 것이라는 뉴스였다. 금액만 4조원이 넘는, 한국 방위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 ‘패트리엇’, 이스라엘 ‘바락8’과의 경쟁 끝에 따낸 성과라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대규모 무기 도입 내용을 최종 계약에 앞서 이례적으로 발표한 것도 주목을 끌었다. UAE 국방부가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한국형 방공체계 M-SAM(천궁Ⅱ)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것. 계약 규모까지 129억디르함(약 4조1500억원)으로 명시했다. 보안을 중시하는 국제 무기 거래 관행과 달랐다.

천궁 선택한 UAE

중동 무역·금융의 중심으로 떠오른 UAE가 자국 방어 무기체계의 하나로 천궁Ⅱ를 선택한 배경은 뭘까. 뛰어난 성능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초기형인 천궁I과 달리 천궁Ⅱ는 탄도미사일 요격 기능을 갖추고 있다. 최대 속도 마하 5로, 초속 5㎞로 낙하하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한다. ‘미사일 잡는 미사일’로 불리는 이유다. 국방기술품질원의 2017년 시험발사에선 100% 명중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천궁Ⅱ는 미사일뿐 아니라 사격통제소, 다기능레이더, 발사대차량 등이 어우러져 1개 포대를 이룬다.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한화디펜스, 기아 등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이들 무기체계에 집약돼 있다. 이 역시 수출 성공의 요인이었다.

천궁Ⅱ의 쾌거는 UAE가 한국에 보내는 신뢰의 크기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2009년 한국의 UAE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수주를 계기로 본격 시작된 양국 간 협력이 국방 등의 분야로 전방위적으로 확산한 결과라는 것이다. 사실 1990년대만 해도 UAE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국가였다. 적어도 우리에겐 그랬다. 월드컵 예선에서 종종 맞붙는 상대로 더 친숙했다.하지만 UAE는 일찌감치 산유국형 경제구조의 한계를 절감하고 혁신에 나섰다. 1979년 세계 최대 인공 항구인 제벨알리항을 건설했고, 1985년에는 항구 주변을 중동 최초의 자유무역지대로 조성했다. 세계 4대 항공사로 도약한 국영 에미레이트항공을 설립해 국제무역의 기반을 닦은 것도 이 무렵이다. 고층빌딩이 숲을 이룬 대표 도시 두바이는 이제 미국 뉴욕 맨해튼 못지않은 스카이라인을 자랑한다.

3개 정부 이어지며 신뢰 더 커져

30년 가까이 중동에서 근무한 한 대기업 전직 임원에게 ‘천궁Ⅱ 뉴스’를 봤느냐고 물었다. 그는 “누가 뭐래도 양국 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이명박 정부의 공”이라며 “천궁 수출도 그 기반 위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세일즈 외교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가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UAE로부터 원전을 수주한 게 협력의 기폭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원전만이 아니었다. 군사 협력도 이어졌다. UAE의 요청으로 우리 특수부대원들이 파견돼 UAE 군사 교육과 훈련에 기여했다. 이후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양국 관계에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위기를 관리하며 협력을 확대했고, 신뢰는 크고 깊어졌다는 게 정부와 기업들의 얘기다.

UAE는 페르시아만 건너 중동의 강국 이란과 마주한 나라다. 잠재적인 적에게서 유사시 날아올 수도 있는 미사일로부터 영공을 방어할 무기로 한국의 천궁Ⅱ를 택했다. 원전으로 시작해 3개 정부를 거치며 탄탄해진 12년간의 협력이 결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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