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20년간 엉뚱하게 불렸던 유명 작곡가, 뒤늦게 이름 찾다 [김동욱의 하이컬처]

20년 가까이 국립국어원에 의해 '하탸투랸'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다 '하차투랸'이라는 제 이름을 찾게된 옛 소련 작곡가 하차투랸.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캡처
옛 소련의 현대 음악 작곡가로 '아람 하차투리안'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사회주의 소련에서 '스파르타쿠스'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대중적으로는 '칼의 춤'이라는 작품이 유명합니다.

일반적으론 그의 성의 영어 표기인 'Khachaturian'에 근거해 '하차투리안'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공식 표기상 이름(성)은 매우 낯섭니다. 국립국어원이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하탸투랸'이라는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표기를 고수해 왔기 때문입니다.그동안 국립국어원은 그의 성의 원어 표기가 'Хатятурян(하탸투랸)'이라며 러시아어 표기 규정에 맞춰 그의 이름을 '하탸투랸'으로 삼는다고 '규정 용례' 등을 통해 밝혀왔습니다.

온라인 검색을 해보면 이 '하탸투랸'이라는 표기는 주요 언론에서 2007년부터 등장합니다.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규정하는 국립국어원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략 2000년 전후로 '하탸투랸'이라는 표기가 규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통용되는 작곡가의 이름과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표기 사이에 괴리가 너무 큰 탓에 음악계와 일반에선 '아람 하탸투랸'이라는 작곡가의 이름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마치 국립국어원에서 '짜장면'이 틀리고 '자장면'이 맞다며 오랜 기간 '자장면'을 밀어왔지만, 언중 사이에선 외면받았던 사례와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던 것입니다.기자는 지난여름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한 기고문에서 '하탸투랸'이라는 표기를 접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표기법이 권장되는 이유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옛 소련에서 발행된 '하차투랸' 기념 우표. 'Хачатурян(하차투랸)'이라는 표기가 선명하다.
이와 관련해서 러시아어판, 영어판, 독일어판,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와 브리태니커 사전 온라인판을 찾아본 결과, 모두 그의 성을 키릴문자로 'Хачатурян(하차투랸)'으로 적고 있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발음표기의 근거로 삼았던 'Хатятурян(하탸투랸)'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키릴문자를 모르시는 분에겐 그게 그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어의 'ㅊ' 발음이 나는 'ч'대신 'ㅌ' 발음이 나는'т'로, 'а(아)'대신 'я(야)'로 다른 스펠링이 사용된 성명을 바탕으로 한국어 표기법을 정했던 것입니다.그런데 국립국어원이 근거로 삼은 'Хатятурян'이라는 성명은 온라인 검색을 해봐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옛 소련의 유명 작곡가는 물론 'Хачатурян'이라는 스펠링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외국인이 이순신 장군과 김구 선생의 한국어 표기가 '이숭쉰 장군'과 '김큐 선생'이라고 정의한 뒤에 그에 맞춰 올바른 영문 표기를 정하는 꼴인 것입니다.

20년 가까이 '하탸투랸'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다 '하차투랸'이라는 제 이름을 찾게된 옛 소련 작곡가 하차투랸/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홈페이지 캡처
이에 지난 8월 국립국어원에 현행 표기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고, 최근 하차투리안의 러시아어 원어는 'Хачатурян(하차투랸)'이며, 이를 러시아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하차투랸'임을 확인했다는 답변을 얻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향후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를 통해 해당 표기를 다시 검토하겠다며 표기 심의 및 수정에는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널리 사용됐던 '하차투리안'과 유사한 '하차투랸'이란 표기가 공식 표기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20여 년 전에 외래어 표기법을 지정하면서 무지 내지는 실수로 하차투랸(하차투리안)의 이름이 '하탸투랸'이라는 엉뚱한 형태로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잘못된 표기를 사용하도록 음악계, 문화계, 언론계, 출판계에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런 잘못이 20년 가까이 이어진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름 아닌 역사적,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의 이름을 우리만 엉뚱하게 부르라고 정부 유관기관이 나서서 밀어붙인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뒤늦게라도 잘못된 점이 확인됐으니 다행입니다만,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공식적으로 잘못된 표기가 시정되고, 이를 널리 알려야 할 듯합니다.누구나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실수를 고치는 것을 미적대는 것은 실수를 한 것과는 비할 수 없는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공공기관이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면 더욱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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