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걸까, 의심 들땐 연습 또 연습…집념의 발레리나 파리의 별이 되다

피플스토리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 박세은

창단 352년 만에 첫 아시아인 에투알
발레단 입단 후 찾아온 무대 공포증
끝없는 연습으로 주역 따내며 극복

승급 발표 후 佛 언론 "준비된 무용수"
"더 이상 나를 증명해 보일 필요 없어
최고의 자리에서 배역에 몰입할 것"
“박세은은 늘 준비돼 있다. 그의 춤은 영혼을 드러내듯 섬세하면서도 정밀함을 보여준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서 내놓은 백옥 같은 ‘에투알(별)’이다.”

지난 6월 11일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이렇게 평했다. 발레리나 박세은(사진)이 전날 파리오페라발레단(BOP)의 발레극 ‘로미오와 줄리엣’ 개막 공연을 마치고 수석무용수(에투알)로 승급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다. 프랑스의 발레전문지 ‘댄서(Danser)’도 “박세은은 기교는 물론 작품 해석도 정확하며, 다채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력도 갖췄다”고 호평했다.
발레리나 박세은이 지난 6월 파리 바스티유 극장에서 발레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아 독무를 펼치고 있다. /에투알클래식 제공
발레 종주국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352년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인 수석무용수가 나온 데에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오렐리 뒤퐁 파리오페라발레 예술감독은 “부 메리테(당신은 자격이 있어요)”라고 격려했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긴 승급을 박세은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서울 정동극장에서 그를 만나 물었다.

“믿기지 않았어요. 콩쿠르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을 때도 담담했죠.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서요. 에투알이 된 건 달랐습니다. 저를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왔으니까요.”

박세은은 영광스러움과 함께 ‘해방감’을 강조했다. 수석무용수가 받는 어떤 혜택보다도 그가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다. 수석무용수는 승급 심사를 거치지 않고 예술감독과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지명된다. 모든 공연이 승급심사 자리인 셈. 이제 정점을 찍었으니 배역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10년에 걸친 고행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박세은은 2011년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연수단원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성실성과 실력 덕에 승급 속도가 빨랐다. 입단 다음해에 정단원으로 발탁됐고 2013년 1월 코리페(군무리더)로 승급했다. 그해 11월에는 쉬제(솔리스트)로 한 단계 올라갔다. 2016년 프리미어 당쉐르가 됐고, 올해 수석무용수가 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온전히 노력으로 이룬 성과였다. 박세은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국립발레단 문화학교에서 발레를 처음 접했다. 또래에 비해 동작이 느렸고, 춤 순서를 까먹기 일쑤였다. 취미로 시작한 발레였기에 학교에서 유급을 당해도 여유로웠다. 그는 예원학교에 입학하면서 발레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예원학교 다닐 때는 점심도 거르면서 연습했어요. 즐거웠고 행복하게 춤을 췄습니다. 발레 수업을 앞두고 잠을 설칠 정도로 발레에 미쳐 있었죠.”

아는 자(知之者)가 즐기는 자(樂之者)를 이길 수 없다는 논어 구절처럼 그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 나간 한양대 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탔고, 수석으로 예원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2007년 발레리나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스위스 로잔 콩쿠르 1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2010년에는 불가리아 바르나 콩쿠르 금상을 타며 샛별로 떠올랐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꿈에 그리던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했지만 당혹스러웠다. 여태 배워온 러시아 바가노바식 발레와는 프랑스식 발레 스타일이 달라서였다. 춤에 확신이 없었다. 제대로 추고 있는지 늘 의심했다. 2014년 ‘백조의 호수’ 주역을 맡았을 때도 두려움이 앞섰다. 그는 “오랜 시간 방황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떨리고 무서웠다”며 “끝없는 연습으로 주역을 따내고 승급이란 결과를 얻자 불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기쁨도 잠시,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2015년 연습 중 구두 굽에 받혀 이마가 6㎝가량 찢어졌다. 표정 연기가 중요한데 얼굴을 다친 것이다. 이내 그는 재기했다. 2018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당스’에서 최고 여성무용수상을 거머쥐었다. 같은 해 발레극 ‘오네긴’을 연습하다 갈비뼈가 부러진 가운데 받은 상이어서 더욱 값졌다.오뚝이처럼 위기를 털어낸 원동력은 뭘까. 20년 가까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설렌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이라 지치지 않아요. 수석이 끝이 아니에요. 제가 춰야 할 발레는 무궁무진한걸요.”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