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등장 40년…그 시작과 끝을 지배한 카라얀 [김동욱의 하이컬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사진=한경DB
태초에 말씀이 아니라 카라얀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CD의 창조와 관련해선 그렇습니다. 음악 저장·재생 매체로서 CD가 일반에 선보인 지 올해로 40년이 됩니다. CD의 등장과 보급에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했던 20세기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CD의 퇴조기에도 여전히 절대적인 위상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야말로 '불멸'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카라얀은 생전 900종 이상의 클래식 음악을 녹음했으며 LP와 CD의 누적 판매량이 1억 장을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레퍼토리도 방대해서 서곡이나 아리아 등 별도 녹음을 제외한 순수 곡목 기준으로 540곡, 별곡 포함으론 1189곡의 녹음을 남겼다고 합니다. 평생 3198회의 공연을 했습니다. 지휘자로 본격 활동한 62년간 평균 주 1회씩 콘서트를 연 셈입니다.완벽주의자의 면모도 두드러져서 3번 이상 녹음한 곡만도 142곡에 달한다고 합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 남작 서곡'과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은 무려 10번씩 녹음을 했습니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통해 총 4회에 걸쳐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 녹음을 내놨으며 그중에서도 5번, 7번, 9번 '합창' 교향곡의 경우 각종 라이브 음반을 포함 9종씩의 음반이 발매됐습니다. 3번 교향곡 '영웅' 음반도 8종이나 됩니다.
카라얀에게 CD를 소개하는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필립스·소니
CD의 탄생과 대중과의 첫 만남에도 카라얀이 빠지지 않습니다. 소니와 필립스가 CD를 공동 개발할 때부터 카라얀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됐습니다. CD의 프로토타입을 들고 방문한 모리타 아키오 소니 회장에게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판을 뒤집지 않고 한 번에 들을 수 있도록 74분 분량의 음악을 담을 수 있도록 요구했다는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입니다. (이때 74분은 통상 베토벤 9번 교향곡을 66분대에 연주했던 카라얀의 '빠른 연주'가 아니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느린 연주'기준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당초 60분 분량의 오디오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지름 115㎜의 CD는 79분, 12cm로 저장 용량이 조정됐고,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4년부터 소니와 필립스, 폴리그램 등이 개발을 시작한 CD에 카라얀은 일찍부터 큰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1981년에는 자신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 것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CD 기술이 완성되자 '기적(Wunder)'이라고 격찬하기도 했습니다.자연스럽게 첫 CD도 카라얀의 몫이었습니다. 1982년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발매된 CD는 카라얀 지휘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Alpensinfonie)'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쇼팽 연습곡 녹음과 스웨덴의 뮤직그룹 아바(ABBA)의 '더 비지터(The Visitor)' 음반도 동시에 선보였습니다.
CD를 들고 있는 카라얀
CD는 음악감상에 있어 하나의 '혁명'으로 다가왔습니다. CD에 담긴 음의 폭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고, 재생 과정에서 먼지에 레코드 바늘이 튀는 잡음도 전혀 없었습니다. LP에 비해 크기도 작아, 여러 음반을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도 있었습니다. 보관도 간편해 LP와 달리 표면에 스크레치가 날 일도 크게 줄었습니다.

1990년대 CD는 음악산업 성장의 선봉장이었습니다. 와이어 분석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글로벌 음악산업의 수익은 CD 전성기였던 1999년에 227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해 CD 판매 규모는 2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급성장 했다가 급격히 쇠락하는 CD/와이어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CD는 그 자체로 '파멸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0과 1의 디지털 정보로 구성된 CD는 아날로그 저장 매체와 달리, 정보 손실 없이 콘텐츠의 무한 복제가 가능했습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음원 다운로드가 가능해지면서 CD의 성장은 발목이 잡혔습니다. MP3의 등장은 결정타가 됐습니다. CD의 쇠퇴는 가팔라졌습니다. 2020년 현재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오디오 스트리밍 형태의 음악거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CD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카라얀 재발매 음반
아이러니한 것은 CD의 생명 유지의 상당 부분을 클래식 음악이 차지하고 있으며, CD의 연명에 카라얀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카라얀은 1989년 사망했지만, 그의 음반들은 이후 계속해서 재발매되고 있습니다. 각종 박스형태 전집은 물론, 그의 주요 음원들이 커버를 달리하며 소비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카라얀 재발매 음반
CD의 시작과 끝을 카라얀이 함께 하고 있고, '불멸의 카라얀'의 모습도 CD와 함께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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