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공포의 순간'이 된 파월의 오후 12시

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오전만 해도 차분했습니다. 주요 지수는 보합세로 출발했고 나스닥을 제외하면 플러스권에 머물렀습니다.

개장 직전 발표된 주간 실업급여 청구건수는 시장 예상과 비슷했습니다. 전주보다 9000건 증가한 74만5000건이었습니다. 월가 예상치 75만 건을 약간 하회했습니다. 또 1월 공장재 수주 실적이 2.6% 증가해 예상치 2.3% 증가보다도 높았습니다.
모두가 기다리던 오후 12시. 미 중앙은행(Fed)의 제롬 파월 의장이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잡포럼 참여를 위해 온라인에 등장했습니다. WSJ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20분 이상을 할애해 금리와 인플레이션 전망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파월 의장은 최근 채권 수익률의 급등에 대해 "주목할 만한 것이었고 내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 시장에서 무질서한 여건이 형성되거나 금융 여건이 계속 긴축된다면 우려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추가 정책이나 정책 변화는 전혀 시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의 특정 금리나 가격을 단독으로 보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 "전반적 금융시장 여건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현재 여건은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특히 인플레이션과 관련 "경제가 재개되면 기저효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나타나겠지만 일시적일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플레의 일시적 증가를 본다고 해도 우리는 인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파월의 발언은 오는 16~17일 열릴 Fed의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전 마지막 공개 발언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시장은 Fed의 정책 변화에 대한 힌트가 나오길 바랐지만 파월은 기존 발언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이날 발언은 사실 매우 완화적이었습니다. 파월은 "우리는 최대 고용과 평균 2 %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향해 먼 길을 가고 있다. 고용 및 인플레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상당한 추가 진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최소 현 규모의 막대한 자산 구매를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특히 인플레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 금리를 올리겠느냐는 질문에 "몇 년(year over year over year)"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더욱 높이는 쪽으로 작용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파월 의장은 참을성을 강조하면서 수년간 금리 인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투자자들은 그가 인플레 압력을 인정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존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한 데 실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파월의 발언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난 12시10분께 정책 변화가 없을 것이란 게 확실해지자 시장은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연 1.462%에 머물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순식간에 1.545%로 치솟았습니다. 한 때 1.555%까지 올랐습니다.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다이빙을 했습니다. 기술주가 폭락하면서 나스닥은 순식간에 3% 넘게 추락했고 다우도 2% 가량 떨어졌습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는 전날보다 5.07포인트(18%) 폭등해 31.44까지 치솟았습니다.

두 시간여 쉼 없이 내리던 지수는 오후 2시께 소폭 반등했고 다우는 1.11%, S&P 500 지수는 1.34% 하락한 채 장을 끝냈습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11% 급락하면서 1만2723.47에 마감됐습니다. 나스닥은 올해 연간 기준으로 마이너스로 전환됐으며, 장중 최고점에서 10% 이상 떨어지면서 기술적으로 '베어마켓(하락장)' 진입을 예고했습니다.
피터 부크바 블리클리자문 설립자는 CNBC 인터뷰에서 "최근 금리 상승은 Fed가 채권 시장 장악 능력을 잃고 있기 때문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파월이 더 비둘기파적인 얘기를 할수록 장기 금리가 더 올랐다는 건은 시장은 Fed와 의견이 다르다는 뜻"이라며 "시장이 인플레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Fed가 통화정책 접근 방식을 바꿀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장 금리는 더 치솟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금리 상승 우려에 모든 자산들이 요동쳤습니다. 금값은 한 때 온스당 1700달러 선 밑으로 떨어졌으며 비트코인도 덩달아 떨어졌습니다. 반면 ICE 달러인덱스는 치솟아 전날보다 0.76% 오른 91.63을 기록했습니다.
이 시각 월가의 인플레 우려를 자극하는 또 다른 소식도 동시에 터졌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산유국들이 모인 OPEC+가 "3월의 생산 수준(감산)을 4월에도 이어가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겁니다. 이들은 러시아(하루 13만 배럴)와 카자흐스탄(하루 2만 배럴)에만 소폭 증산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감산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일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4월에도 지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장에선 그동안 유가 급등에 따라 하루 50만 배럴 규모의 증산 합의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이 소식이 나오자 WTI와 브렌트유 등 국제유가는 한 때 5% 가량 폭등했습니다. 이는 투자자들의 인플레 우려에 휘발유를 부었습니다.

이날 금리 외에 시장은 다른 한 켠을 우려 깊은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테슬라는 장중 한 때 600.0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작년 말 695달러에 S&P 500 지수에 진입한 테슬라는 1월 초 900달러까지 올랐었습니다. 621.44달러로 마감된 테슬라는 120일 이동평균선까지 무너져 추가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날 테슬라의 가장 큰 우호적 투자자였던 배론캐피털의 창립자 론 배론이 테슬라 지분 상당수를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 "테슬라가 포트폴리오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180만주를 매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회사는 지난달 말 610만주를 갖고 있었습니다. 약 30%를 매각한 겁니다.

그동안 테슬라 주가는 2000달러가 되고, 테슬라는 2조 달러 기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온 배론의 주식 매각 소식은 동요를 불렀습니다. 다만 그는 "개인적으로 보유한 110만주는 팔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테슬라와 비트코인이 내리면서 캐시 우드의 아크펀드도 폭락세를 이어갔습니다. 대표 펀드인 아크 아노베이션 펀드(ARKK)는 이날 5.35% 내린 118.43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포트폴리오내 10% 비중을 차지하는 테슬라(4.86%)보다 더 많이 내린 겁니다. 지난달 16일 장중 사상 최고가 159.7달러를 기록했던 걸 감안하면 20여일 만에 26%나 떨어졌습니다.
우드는 여전히 테슬라와 줌, 팔란티어 등 급락하는 기술주들을 추가로 사모으고 있습니다. 전날 우드는 펀드들을 동원해 팔란티어 주식 265만주를 추가 매입했습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국채 수익률 급등에 동요하지 않는다"면서 기술주 베팅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우드는 테슬라에 대해 "자율주행 전략에 대한 확신은 더 커졌다"고 말했고, 줌에 대해서도 "저평가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금리가 더 오를 겁니다. 그리고 기술주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아크 펀드들은 버틸 수 있을까요.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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