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일을 통해 삶의 의미 찾아주는 사람 되고 싶어"

[소명으로 사는 사람들 : 이찬 서울대 교수]

교육학 전공→레고코리아→대학원 진학→LG전자 미국법인→서울대
삼국지,수호지,장길산,토지가 내 생각의 근육 키워줘
기업가정신,진로교육,리더십,조직개발 등 후학 양성
이찬 교수는 지난해 11월 열린 한경 글로벌HR포럼에 참석해 'AI시대 기업의 인재양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을 ‘교수’로 특별히 정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직업 자체를 목표로 하기 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읽고 쓰고 말하는 활동을 좋아했고, 그래서 꾸준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인력개발 분야를 연구하며, 논문을 쓰고, 컨설팅을 하고 가르치게 된 듯 합니다. 노래 제목 [기억의 습작]처럼, 시간을 거슬러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된 터닝포인트들을 독자들과 함께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

일기는 내 친구...일기로 글쓰기 익혔죠

초등학교 5학년 2학기를 마칠 무렵 겨울에 이사를 해 새 학교로 전학을 왔다. 전학 온 날이 마침 겨울 방학식 날이라 새로 온 동네에서 친구들을 사귈 겨를도 없이 방학에 들어갔다. 워낙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무리지어 다니며 뛰어 놀기를 좋아했던 터라, 누군가 대화 상대가 필요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고 전학온 나와 말동무할 친구는 없었다. '나 자신과의 대화라도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해 겨울방학부터 군 복무 기간에 이르기까지 약 10여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다.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한 셈이다.

읽고 쓰는 것이 좋아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문예부에 들어갔다. 학교 교지편집부 활동을 할땐 행복했다. 고교 입시 공부에 파묻혔어야 할 시기에도 틈나면 문학책을 읽었다. 단편소설들도 좋았지만 특히 호흡이 긴 장편소설을 즐겼다. 10여권짜리 대하소설을 다 읽었을땐 장거리 마라토너가 느낄 수 있는 쾌감도 맛볼 수 있었다. 이 때 읽었던 이문열의 삼국지(10권), 그리고 수호지(10권), 조정래의 태백산맥(10권), 황석영의 장길산(12권), 박경리의 토지(20권) 등은 내 생각의 근육을 키워 주었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생각의 근육은 교수로서 연구하고 논문 쓰고 가르치는 데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사람을 좋아했다. 인간의 성장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유난히 선생님들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난 덕분에 대학에서도 교육학을 공부했다. 집안에 유치원, 초, 중, 고, 대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계셔서 자체적으로 홈스쿨링을 운영해도 될 만큼 교육자들이 많았다.


교육학 전공했지만...첫 직장은 레고코리아

아이들을 위한 '페다고지(교육학)' 뿐만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안드라고지'에도 관심이 많았다. 학과 친구들은 중등교사가 되기 위해서 국어나 사회 등의 교직과목을 부전공했지만, 나는 산업심리학 관련 과목을 부전공으로 이수했다. 친구들은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할때 나는 캠퍼스 리크루팅에 참여했다. 졸업을 하면서 나는 교사가 아닌, 레고(LEGO) 기업의 인사/교육 담당자로서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1997년 입사할 당시는 우리나라는 주 6일 근무를 하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외국계 기업이어서 유럽 본사의 방침에 따라서 한국 레고법인도 주5일 근무제를 시행했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회사 생활을 하던중 공교롭게도 외환위기(IMF)를 맞이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처럼 레고도 엄청난 규모의 구조조정 업무를 인사팀에서 추진했다. 그 때 처음 평생직장은 없다는 것과 자기계발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렇게 구조조정의 회오리 바람을 거치면서 사표를 쓰고 또 다른 선택을 위해 미국 오하이오주립대(OSU) 유학길에 올랐다. (일리노이대학교(UIUC)와 오하이오주립대학교(OSU), 버지니아텍(VT)에서 어드미션을 받았지만 학교 선택의 최종 기준은 당해연도 해당 전공학과의 US News에서 소개된 랭킹을 참고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깟 대학 순위 몇 개 차이가 뭐가 그리 중요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경험이 미천했던 나에게 그 당시에 사소한 랭킹도 의사 결정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부족한 영어를 보완하기 위해 학부시절 내내 캠퍼스에 설치된 어학교육원에서 외국어 강좌를 꾸준히 수강한 덕분이었다.

레고코리아에서의 인사/교육 실무 경험은, 유학 중 인력개발(Human Resource Development)과 인사관리(Human Resource Management) 관련 과목들에 몰입할 수 있는 동기가 됐다. 석·박사과정 6년 유학생활 동안 나 자신을 관리하기 위해 좋아하는 맥주 한캔 마시지 않았다. 영어 연습을 위해서 한국인 유학생 동료들과의 교류도 최소화 했다. 그야말로 '월화수목금금금'의 대학원 생활이었다. 나 자신에게 엄격했다. 이를 통해 석·박사 과정 22쿼터 중에 첫학기를 제외한 21쿼터 동안은 대학 연구조교로 근무하며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외환위기로 환율이 치솟은 시절에도 무사히 학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만나게 된 학계의 저명인사이자 유태인이신 지도교수님의 교육철학과 지도방식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제간의 인간적인 신뢰가 지속되었고, 졸업 후 17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매년 만나 뵙고 학술적 교류를 이어가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이찬 교수는 2000년 초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대학원 생활을 "나 자신을 제대로 컨트롤 하기 위해 맥주 한캔도 마시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공부와 싸웠던 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사학위후 미국 LG전자 법인서 또 직장생활

박사 학위 심사를 통과하고 졸업할 즈음, 나는 미국에 있는 LG전자 서비스의 현지 법인 인사팀에 입사했다. 유학생을 대상으로한 채용 공고는 미국내 주요 대학들의 한인학생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재되었기에, 적극 활용했던 기억이 있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의 연구소에 근무하며 대학원 재학 중 배운 다양한 지식들을, LG전자 미국법인에서 마음껏 적용해 볼 수 있었다. 이론과 실무의 중요성을 체험하며 경력개발을 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

때가 되면 고향으로 회귀하는 연어들처럼, 주어진 학업과 직업의 기회를 감사히 누린 미국 생활을 마무리 할 겸 귀국을 위한 전직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도 교수라는 직업 자체 보다는 [인력개발] 이라는 전공 분야에 내 경력개발의 무게 중심을 두었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채용 정보는 주로 '하이브레인넷'이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얻었다. 귀국을 앞두고 몇 가지 선택지를 놓고 한참 고민했다. 귀국을 준비하며 지원했던 기업과 기관들 중에 금전적 보상 수준은 국민은행 연수원이 제일 좋은 조건이었다. 개인적 흥미 수준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일 마음에 끌렸고, 잠재적 발전 여지는 서울대학교가 제일 나아 보였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당시 직장 상사도 기꺼이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셨다. 이분들의 귀한 말씀을 토대로 2006년부터 서울대학교 농산업교육과 산업인력개발학 전공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했다.

교수채용 과정은 서류 전형 및 심층 면접 뿐만 아니라, 지원 학과의 재학생들과 여러 전공 교수님들을 모시고, 시범 수업을 진행하여 전공 전문성과 교수법에 대한 공개 심사도 병행된다. 학계로의 커리어를 꿈꾸는 연구자들은 대학원 과정에서부터 수업 과제 보고서 등을 충실히 개발하여 컨퍼런스나 학술지에 연구 결과물을 발표하면 교수 지원을 위한 연구 성과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대학들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이찬 교수가 지난해 줌을 통해 강의를 하고 있다.

이론에 현장 목소리 생생한 강의 '인기'

전공분야인 인력개발은 응용학문인지라 현장과 연계된 산학협력이 중요하다.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 후에도 현장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학문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기업과 기관에서의 인재육성 및 성과관리, 그리고 학교에서의 진로교육 및 경력개발에 관한 연구들까지 진행중이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선 △성과관리 △조직개발 △기업가정신 △진로교육 △리더십개발 등을 맡아서 가르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서울대학교의 경력개발센터장을 맡고 있다. 청년 취업난 시대에 고용절벽에 있는 취준생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 교수라는 직업보다는, 내 적성에 맞는 인력개발 분야를 찾아 관심과 흥미를 두고 꾸준히 노력해 온 것이 오늘날의 이찬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제자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적성을 찾고, 잘 할 수 있는 소질을 발굴하여, 좋아하고 잘하는 업을 찾아 행복한 삶을 꾸려가기를 소망해 본다. 어느 분야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하는지 못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누구나 해봐야 안다. 그래서 시도할 수 있는 용기와 경험이 중요하다.
글=이찬 교수, 정리=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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