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필드 이어 스타벅스까지…유통기업 발목 잡는 '정치 규제'

현장에서

복합쇼핑몰 규제법 통과땐
아이파크몰 등 월 2회 닫아야

규제 근거는 '아마추어식 설문'
조사 문항 2~3개에 불과

박동휘 생활경제부 기자
서울 용산 민자역사에 있는 HDC아이파크몰에 2015년 면세점이 문을 열었을 때의 일이다. 주변 맛집들은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만 해도 HDC신라면세점 방문객은 하루 평균 5000여 명에 달했다.

한때 서울 도심의 슬럼가였던 용산역 주변은 2005년 아이파크몰이 들어선 이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이뤘다. 아이파크몰을 찾는 연 방문객 수가 2017년 2700만 명에서 2019년 3500만 명까지 급증했다. 용산역 인근의 유동인구(서울열린데이터광장 자료)도 2018년 하루 평균 11만 명에서 작년 1월엔 20만 명 규모로 늘었다.하지만 HDC아이파크몰은 앞으로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복합쇼핑몰 규제법(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어서다. 이 법안의 논리에 따르면 아이파크몰은 용산역 변신의 주역이 아니라 용산역 상권 침체의 주범이다.
규제가 정당성을 지니려면 대체로 두 가지 중 하나는 충족해야 한다. 규제로 인한 혜택이 보편적이거나 사회적 약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한다는 효과가 증명돼야 한다.

요즘 ‘시대착오적 규제’라고 지탄받는 유통산업발전법만 해도 1997년 제정 당시엔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월마트, 테스코 등 글로벌 유통업체가 물밀듯이 밀려들면서 소상공인들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던 때였기 때문이다.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최근 여당은 대형마트에 이어 복합쇼핑몰의 영업시간도 제한하겠다며 법안을 내놨다. 주변 상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이다. 그러면서 내놓은 근거는 단 한 가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쇼핑몰 주변 상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가 전부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설문 문항이 무엇이었는지, 주로 어떤 이들이 응답했는지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공단이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공개하기가 거북했던 모양이다. 설문 문항은 2~3개였고, 질문도 ‘복합쇼핑몰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이 있는가’ 등의 피상적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상은 어떨까. 한국유통학회가 상권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지난해 내놓은 ‘대형유통시설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설문 내용과 정반대 결과를 도출했다. 유통학회는 지난해 7월부터 수개월간 복합쇼핑몰 방문객의 동선과 카드 사용 행태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스타필드(하남점)가 들어선 뒤 인근 상권 매출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인근 상권의 매출 증가 폭이 경기도 평균의 2배에 달했다.규제 정당성을 잃은 국회 입법안은 이뿐 아니다. 작년 하반기 발의된 지역상권상생법도 그런 예다. 이 법안은 지역활성화구역 내 대규모, 준대규모 직영가맹점과 휴게음식점업 영업시간을 지방자치단체장이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스타벅스를 겨냥했다 해서 ‘스타벅스법’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법안도 지역 상인들이 상권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타벅스 입점을 앞다퉈 요청하고 있는 현실과 정면 배치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정치인들을 만나 규제의 부당함을 얘기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신기한 점은 만나는 정치인들마다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답변하는데도 말도 안 되는 규제법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