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숙사 쫓겨난 경기大 학생들

영동고속도로 동수원 나들목을 빠져나와 수원종합운동장 쪽으로 틀면 광교산 밑자락에서 50만㎡ 규모의 대학 캠퍼스를 만나게 된다. 경기대 수원캠퍼스다. 모르는 사람들은 학교명만 보고 도립(道立)대학으로 착각할 법하다. 하지만 경기대는 짧지 않은 역사의 도내 ‘간판’ 사학(私學)이다. 구한말 거부(巨富)로, 인창의숙을 설립한 교육자 성암 손창원 선생의 아들 소성 손상교 선생이 1963년 설립했다. 장윤창 신영철 후인정 등 국가대표를 줄줄이 배출한 ‘배구 명문’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경기대가 코로나 3차 팬데믹 와중에 뜻하지 않게 이슈가 됐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도내 병상이 부족해지자 학교 측과 상의 없이 기숙사를 치료시설로 전환하는 긴급조치를 내린 것이다. 감염병예방법 49조를 근거로 삼았다. 경기대 기숙사는 2개 동(棟) 1058실 규모다. 2011년 준공한 비교적 새 건물이어서 경기도 입장에선 경증환자를 수용할 최적지로 먼저 떠올렸을 만하다.그러나 교육계에선 “재단(경기학원)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어 관(官)의 눈치를 봐야하는 학교상황을 도(道)가 이용했을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온다. 성암의 손자인 손종국 전 총장은 횡령혐의로 2007년 징역형을 받은 뒤 해임됐다. 이후 야인처럼 살다가 지난해 7월 재단 이사로 선임됐지만, 학내 반발로 교육부 승인을 못 받고 있다. 경기대는 경기도 발표 하루 뒤인 지난 14일 도의 결정을 순순히 수용했다.

이 지사의 ‘군사작전’ 같은 일처리를 보고 “시원하다”며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경기도와 학교 측의 결정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당하는 학생들 몫이 됐다. 방학 동안 기숙사에 있어야 할 학생에게 대체 주거지를 지원한다지만, “전시에 준했다”는 기숙사 징발에 충격을 받은 학생들이 많다. 대학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엔 “국·공립도 아닌 사립대 기숙사를 협의도 없이 쓰겠다고 밀어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 “시험도 안 끝났는데 사전공지도 없이 언론 보도로 알게 됐다” “엄동설한에 17일까지 무조건 나가라니”라는 성토가 쏟아졌다.

이번 건을 계기로 기본권 희생을 당연시하는 한국식 방역에 다시 의문이 제기된다. 방역을 빌미로 기본권을 침해하고, 학생들 터전을 징발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일방통행이 언제 튈지 모른다. 코로나 확산을 자초한 건 정부의 ‘갈팡질팡 방역’이었다. 국민의 방역 신뢰와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정부는 “협조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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